세종·문종이 재위했던 15세기는 한국 화약무기의 전성시대였다. 이 무렵 많은 화약무기가 새롭게 연구·개발됐다. 그 산물 중의 하나가 화차(火車)다.

화차는 신기전(神機箭)이나 총통(銃筒)을 여러 발 탑재한 무기로 현대 무기체계와 비교하면 육군 포병의 다연장 로켓에 해당하는 무기다.

화차는 방송사의 역사 다큐멘터리나 일반 교양국사 서적에도 흔히 등장하는 무기여서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물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행주산성 유물전시관·전쟁기념관·진주성 임진왜란박물관 등에 전시된 화차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전세품(傳世品) 실물이 아니다.

조선시대 책인 ‘병기도설’(兵器圖說)에 나오는 기록을 근거로 1979년 화차를 최초로 재현한 학자는 채연석 현 항공우주연구원 원장이다. 현재 국산 로켓 개발을 총지휘하고 있는 채원장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지시를 받고 조선시대 문종 화차를 복원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채원장은 “화차 자체도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만 화차의 발사기 틀을 탑재하고 있는 수레에도 과학적 독창성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시대의 화차는 모두 ‘병기도설’에 근거해 채원장의 복원설계를 기초로 만들어진 문종 화차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문종 화차 외에 다양한 화차가 존재했다.

지난해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강성문 교수가 발표한 논문인 ‘조선의 역대 화차에 관한 연구’는 조선시대의 다양한 화차 종류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학술적 성과물이다.

강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화차는 문종 화차뿐만 아니라 최무선 화차·최산해 화차·유성룡 화차·변이중 화차, 이서 화차·허적 화차·신경준 화차·박종경 화차 등 10여 종의 화차가 존재했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화차(문종 화차)는 신기전 100발과 사전총통 50자루를 탑재하고 있는데 반해 유성룡 화차는 승자총통, 박종경 화차는 조총 50자루를 탑재하고 있다. 특히 훈련도감 대장이었던 박종경이 1813년에 쓴 ‘융원필비’(戎垣必備)라는 책에 나오는 화차는 지붕 덮개와 방호용 방패까지 설치돼 있어 자체 추진력이 없을 뿐 현재의 장갑차를 연상시키는 위용을 갖추고 있다.

박재광 전쟁기념관 학예연구관은 “문종 화차나 그 이후의 화차들은 한국의 독창적 무기”라고 말했다. 채원장도 “화차는 15세기를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개발된 화약무기 중 가장 훌륭한 무기”라고 평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9.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