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붉은 신'(Red god of war). 구소련군이 포병을 일컫던 말이다. 구소련군은 특정 무기체계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보지 않았다. 전쟁은 의지의 싸움이므로 최후의 결전은 사상으로 무장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고 무기체계는 그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라고 믿었다.

그들은 혁명 이후 열악한 작전여건을 의지와 시간으로 극복코자 했다. 즉 열악한 경제사정, 진부한 과학기술, 낮은 교육수준 등은 군대의 조직 ·편성 ·운영에 큰 장애요인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높은 기술력과 고비용이 소요되는 고급장비들을 배비(配備)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광활한 대지와 연결돼 있는 전선에서의 화력 요구는 간편하게 운용할 수 있으면서도 값싼 것들이어야 했다.

로켓은 이러한 요구와 조건을 충족하고 수용해 줄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부문의 무기로 인식됐다. 작게는 견착사격식 로켓 응용 무기에서 크게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에 이르는 매우 폭넓은 운용범위를 갖추게 됐다. 여기서 구소련군의 포병은 관(tube)에서 발사되는 로켓까지를 포함하게 됐고 그것은 제2 포병으로 전술수준에서 전략수준까지 매우 폭넓은 스펙트럼의 화력이 됐다. 즉 전쟁의 붉은 신이 됐던 것이다.

반면 영·미 계열의 군대는 화력을 공중으로부터 얻도록 조직 ·편성 ·훈련됐다. 해외 원거리에서의 전투를 위한 이동전개, 즉 투사전력(projection power)은 중장비가 어렵고 육 ·해 ·공군의 역할 갈등이 군 구조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요소가 되기도 해 조직 ·장비가 군간 상호 의존성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한 것이 전통이 돼 화력전투가 현대에까지 전투의 기본개념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미 지상군의 화력운용 방법이 그렇게 됐던 것은 크게 모자람이 없는 자금 사정과 끊임없는 연구개발이 이러한 사정의 저변을 형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영 ·미 계통의 교리를 채택한 나라들이 로켓을 응용한 무기들을 지상군 제대에 편제장비화한 것은 1980년대 들어 수적으로 증강된 구소련군이나 바르샤바조약군의 전차전력 ·포병화력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고 보면 전략의 상호작용은 어쩔 수 없는 반복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정으로 전투에 응용되는 로켓무기 중 다중 연속 발사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무기의 명칭부터가 각자 자기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구소련의 전통을 승계한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위력을 발휘했던 무기로 스탈린 오르간 ·카튜사 등의 별칭을 갖는 다연장 로켓을 MRL(Multi Rocket Launcher)이라 부르고 북한은 방사포라 하며, 미국은 MLRS(Multiple Launch Rocket System)라고 분류했다. 아무튼 우리는 이것을 `다연장 로켓'이라고 부른다.

초기에는 다른 화력에 비해 정교한 기술을 요하지 않는 전투전력 강화책으로서 이동과 전개가 용이하고 일순간에 고밀도의 화력을 상대적으로 장거리에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출발했던 것이 이제는 정밀도와 사거리 ·탄두의 다양성 ·기동성까지 갖춘 주력장비(?)가 돼 가고 있는 상태다.

먼저 정밀도 면에서 초기에는 단순히 추진체에 탄두를 부착, 레일 위에서 발사하는 지향사격무기 수준이었다. 이제는 강선이 있는 발사구 ·안정핀 ·자세제어 로켓 등의 보조수단까지 응용, 투발정밀도를 향상시켜 조준사격까지 가능해졌고 유도장치까지 부착해 명중정밀도를 극단적으로 향상한 모델까지 개발 ·배치되기에 이르렀다. 사거리 면에서도 야포사거리 내외에서의 집중화력 구실을 기대했던 것이 이제는 30㎞ 이상 300㎞에 이르는 신축성 있는 사정을 갖게 됐다. 구경과 탄두의 다양화가 그것을 더욱 신뢰성 있는 체계로 신장케 했다.

탄두는 비교적 단순한 고폭탄이 일반적이던 것이 집속탄 ·화학탄 등은 물론 정교화된 특수목적탄들도 운용할 수 있게 됐다. 지뢰의 산포, 대전차 무기의 운반, 정밀탐지기류의 운반 등으로 확대된 운반체계로도 응용 가능한 체계가 돼가고 있다. 90~300㎜의 다양한 구경을 비롯, 6~36관의 발사관, 폭넓은 선택이 가능한 탄종 등은 군단급 부대의 화력수단으로서 밀집된 적의 병력 ·전차대열 등은 물론 지휘소 ·집적소를 일시에 파괴하거나 대포병사격, 즉 적의 포병세력을 제압하는 데 매우 큰 유용성을 갖는다.

기동성은 전장 이동·대응사격 회피 ·표적 획득 등에 큰 영향을 준다. 다연장 로켓은 반동이 없고 사격방법이 비교적 단순해 취급이 쉬우므로 소구경 ·소연장의 인마견인식으로부터 중소형 차량탑재형, 장륜형의 차량에 탑재하는 중간형, 궤도차량에 장착하는 대형 등 여러 가지 변종을 만들면 기동성이 크게 증가한다. 오늘날 전투장비의 기본적 요구가 되고 있는 운반취급의 용이성, 즉 철도 ·차량 ·선박 ·항공기 등에 의한 운반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크기와 무게 범위 내에서 설계 ·제작되고 있다.

이 장비의 기동성과 융통성, 즉 운용의 편이성이 되는 기초는 이러한 차량탑재형으로 설계됐다는 것에 더해 재장전 방식이 진보화됐다는 것에도 기인한다. 종래의 단발 후미장진식의 재장전(reloading) 방식이 컨테이너 교체식으로 바뀌었다. 즉 6~12발의 로켓을 미리 컨테이너에 봉입해 두었다가 야전에서 컨테이너를 호이스트(hoist：인양구)로 교체함으로써 사격준비 시간을 크게 단축하고 작업 정확도를 크게 높인 것이다.

다연장 로켓 1대(차량 1대분)는 중형야포(130~203㎜) 1개 포대에 상응하는 화력으로 계산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사정거리는 배가 됐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연장 로켓은 종심전투(deep battle)의 주요수단으로 정착돼 가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전쟁의 붉은 신'의 위치를 고수하는 것일까. 추진체가 고체연료 로켓에서 하이브리드 로켓(고체연료+액체산화제)을 채용, 사거리 연장과 사격통제 방식을 더 유연하게 하고 대구경의 유도탄(ATACMS 등)을 결합해 사용하게 되면 이러한 무기의 운용 융통성은 크게 확대될 것이다. 항공전력이 고비용 부문을 어느 정도 대체하게 되면서 말이다.

〈 공군사관학교 국방학과 교수 권재상 대령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9.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