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멋이 있는 검은색과 아름다운 선으로 고려청자와 더불어 시대를 대표하던 흑유(黑釉)도자기가 경기도 가평군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가평 출신의 김시영(45)씨가 흑유도자기와 첫 만남을 가진 것은 1980년대 초.

연세대학교 금속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국립공업연구소 도자기 시험연구원으로 일하던 김씨는 강원도 깊은 산중의 화전민 터에서 등산 도중 흑유도자기를 접하고는 흑유도자기 연구에 일생을 바칠 것을 다짐한다.

1989년 연구소를 그만둔 김씨는 이천의 한 세라믹 공장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흑유도자기를 빚었으나 경험부족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고려가 망하면서 흑유도자기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 탓에 제조방법을 알지 못한 김씨는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그 뒤에도 흑유도자기 재현을 위해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청평에 터를 만들고 흑유도자기 재현에 몰입하던 김씨는 1990년대 중반의 어느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마친 뒤 가마를 열어 본 순간 그토록 꿈꾸던 흑유도자기를 볼 수 있었다.

청자, 백자와 더불어 찬란한 자기문화를 형성했던 흑유도자기의 맥을 잇기 위해 10여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장엄하고 은은한 격조를 지닌 흑유도자기를 이날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자기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로 김씨는 흙과 유약을 꼽는다.

"흑유도자기는 보통 도자기와 달리 철분함량이 많은 가평지역의 고령토와 도석, 규석 등을 사용해야만 원래의 색을 발산합니다."
이같은 이유로 김씨는 운악산과 명지산, 대금산 등지에서 직접 흙을 채취하고 있으며 유약은 사과나무와 벼를 태워 만든 재를 사용한다.

지역 특성상 과수원과 벼농사를 하는 곳이 많아 재료를 얻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평지역 토양의 기운을 받아 자란 식물이 흑유도자기의 진정한 멋을 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지막 과정으로 기름 가마에서 다양한 온도 변화와 수차례에 걸친 환원염(還元焰)의 가감을 통해 흑유도자기를 탄생시킨다.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가평군 꽃동네에서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토요일 마다 도자기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신미술대전 특선(1994년), 서울 600주년 기념 신기술창작 최우수상 등 각종 미술대전 입상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1999년 경기 으뜸이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씨는 "흑유도자기에 대한 연구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일 뿐"이라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힘든 과정이 계속되겠지만 흑유도자기의 맥을 잇겠다는 초심을 지켜가며 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