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은 소리판을 마지막으로 완성하는 주체다.

판소리는 현장성이 중요시 되는 `판의 예술'이다. 이 판을 구성하는데 소리꾼과 고수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기서 청중이 빠질 경우 소리판은 성립되지 않는다.

판소리는 들려주기 위한 `소리'일 뿐 아니라 보여주기 위한 `판'이라는 점에서 소리판의 청중은 또한 관중의 역할도 겸한다.

소리판의 청중은 소리꾼과 고수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현장에서 추임새를 통해 이들과 결합된다.

특히 청중의 추임새는 공연자인 소리꾼.고수와 청중 사이에 예술적 교감이 활발히 오가면서 서로를 고양시키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가 된다.

추임새가 없다면, 즉 청중의 반응이 없다면 소리꾼과 고수에게 `팍팍하기 이를데 없는' 소리판이 될 수 밖에 없다.

소리꾼들은 `일청중 이고수 삼명창'이란 말을 하면서까지 청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소리꾼은 본격적인 판소리 공연에 앞서 목을 풀기위해 부르는 단가를 통해서도 청중을 소리판으로 끌어들인다.

단가는 대부분 `~하자'는 청유형(請誘形)으로 끝을 맺는다.

이 청유형은 소리꾼과 청중을 `너'와 `나'로 구분하지 않고 `우리'로 결합시켜주며, 함께 어울리고 있다는 일체감을 주게 된다.

청중은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제 3자적 입장을 넘어, 소리판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는 동참의식을 느끼게 마련이다.

즉, 남의 놀이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 자신이 놀이판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청중도 수준이 있게 마련이다.

판소리 속 이야기의 줄거리나 따라가고 익살과 해학에 만족하는 초보적 수준도 있고 판소리의 장단과 성음, 조(調)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고, 나아가 판소리의 음악어법을 잘 이해하고 추임새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청중도 있다.

최고의 경지라면 판소리의 `이면'까지 파악하고 소리꾼을 비평할 수 있는 수준이라 하겠다.

이면이란 어느 대목의 사설 내용이나 철학적 바탕을 뜻한다.

따라서 어떤 소리꾼이 `이면을 잘 그렸다'는 찬사를 받았다면 그는 어느 대목의 내용이나 철학적 바탕을 판소리 음악으로 잘 표현했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하면 내용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이 잘 조화되었다는 말이다.

판소리 3요소라 할 성음.길.장단에 익숙하고 이면까지 파악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이를 `귀명창'이라 부른다.

귀명창이란 말 그대로 판소리를 듣고 감상하는 수준이 판소리를 잘 부르는 명창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소리꾼은 청중 속에 귀명창이 있을 경우 비록 소수라 할지라도 이들의 `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소리를 한다.

명창과 귀명창은 서로 통하는 미적 의미와 예술적 교감이 있기 때문에 지음지우(知音知友)의 사이가 된다.

소리꾼들은 이들 귀명창 때문에 주눅이 들기도 하고 이들 때문에 소리하는 맛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귀명창 있는 곳에 명창이 있다'는 말도 생겨났다.

그만큼 우리의 판소리는 소리꾼과 듣는 이의 교감을 중요시하는 예술이다.

판소리를 듣는 수준과 관계없이 청중에 따라서 우조나 평조, 또는 계면조 등 특별한 음악어법이나 사설을 좋아하는 각기 다른 취향이 있을 수 있다.

청중의 이러한 취향이 통시적(通時的) 측면에서 판소리를 끊임없이 변모시키는 동인(動因)이 되기도 했다.

판소리의 사설 내용이나 창법 등 모든 변모의 핵심적 역할은 소리꾼이 담당했다.

그러나 이들은 일정한 생활 기반이나 생산능력이 없이 자신의 재주를 팔아 삶을 영위해야했기 때문에 고객인 청중의 취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청중은 위로는 왕실에서 양반, 아전 등 중인, 지주 및 상인 등 부호, 농민 등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실로 각계 각층이었다.

소리꾼들은 다양한 계층의 청중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청중들의 취향에 맞추어 끊임없이 판소리를 변모시켜왔다.

이 과정에서 판소리는 대중적 오락성에 고도의 예술성을 겸비한 양면성을 지니게 됐다.

소리꾼 내부에서는 청중의 취향을 받아들일 것인지 예술성을 추구할 것인지가 때론 큰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했다.

동편제의 대가였던 송만갑은 "극창가(劇唱家)는 주단포목상과 같아서 비단을 달라는 이에게는 비단을 주고 무명을 달라는 이에게는 무명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옛것만 고집해서는 현대 대중적 요구에 적응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대로 동편제의 명가였던 송씨 집안에서는 가문의 법통을 무시한 패려자손(悖戾子孫: 성질이나 언행이 도리에 어긋나고 사나운 자손) 취급을 했다.

현대 판소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보성소리 유파를 탄생시킨 정응민(鄭應珉 1896~1964) 명창은 제자들에게 "절대로 청중의 박수나 추임새를 위해서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며 `소리의 법도'를 지켜나갈 것을 강조했다.

청중의 박수나 추임새를 의식하는 태도는 `귀도둑질'이라며 제자들을 힐책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