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 미국 북부 아이오와 주에 살던 사우크족과 폭스족 인디언 전사 200여 명은 동쪽으로 미시시피 강을 건너 일리노이 주로 진격해 들어갔다． 본래 이들은 일리노이 주에 살고 있었는데 1805년 세인트루이스에서 미 정부와 땅을 전부 포기한다는 협정을 맺고 아이오와로 이주했다.

인디언들은 협정 때 어이없이 땅을 빼앗긴다는 의심이 있었지만 힘이 없었다． 27년 만에 이들을 분연히 일어서게 만든 이는 추장 블랙호크（Black Hawk·검은 매）였다． 블랙호크와 전사들은 용감히 싸웠지만 일리노이 민병대와 군대에 패했다．

이것이 미국 역사에서 유명한 블랙호크 전쟁이다． 훗날 대통령이 되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23세의 민병대로 참전해 이 전쟁은 미국인들에게 더욱 기억되고 있다． 비록 패했지만 추장 블랙호크는 용기와 고결한 인품으로 미국인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자서전은 미국인의 고전이 돼 있다． 땅찾기 전쟁 이후 140여 년 만인 1970년대 중반 추장 블랙호크는 미 육군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차세대 작전용 헬기를 도입하려는 육군은 72년 시콜스키 사와 보잉 버톨 사에 경쟁을 붙였다． 76년 시콜스키의 헬기가 낙점됐고 블랙호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필자는 정확히 모른다． 미 육군은 아파치（공격용 헬기）·치누크（수송용 헬기） 등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즐겨 차용하므로 새로운 헬기에 전설적인 인디언 추장의 이름을 붙였을 수 있다． 아니면 무기에 흔히 동물 이름을 붙이는 관례에 따라 헬기가 검정색에 가까우므로 그저 ‘검은 매’라는 일반명사를 붙인 것일 수도 있다． 어찌됐건 블랙호크는 인디언 추장의 명성에 걸맞게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번개 같은 기동력， 꽤 치밀한 방탄무장， 효율적인 구조는 육군사단의 작전능력을 눈에 띄게 향상시켰다．

블랙호크에는 완전무장한 분대병력 11명이 탑승할 수 있다． 8명의 의자를 떼어내면 들것 4개가 실린다． 다 떼어내면 105mm 곡사포 1문과 포탄 30발을 실을 수 있다． 조종석의 방탄유리는 23mm 실탄을 막아낸다． 양쪽 문에는 7．62mm 기관총을 설치할 수 있다． 안을 가득 채우고도 시속 250km로 날아다닌다．

블랙호크는 위험한 상황에 처한 병사들에게는 구조천사다. 91년 걸프전 때 블랙호크는 이라크에 점령된 쿠웨이트 해안에 미리 침투하는 미 해군특수부대 SEAL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와 페르시아 만에서 비상탈출한 다국적군 전투조종사들을 안전하게 ‘수거’하는 작전도 블랙호크의 몫이었다．

블랙호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전투에 참가하면서 어느덧 경찰국가 미국의 상징이 돼 버렸다． 공격용 헬기 아파치， 수송용 헬기 치누크가 있지만 훨씬 다채로운 연기력(演技力) 때문에 블랙호크가 스타가 된 것이다． 블랙호크는 원래 수명이 2002년까지로 돼 있었으나 2025~2030년까지 연장됐다.

스타는 유명세를 치르는 것일까． 블랙호크는 수난을 많이 당했다． 가장 악몽 같은 기억은 소말리아 비극이다．

93년 10월3일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육군 레인저 부대는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악명 높은 군벌 모하메드 파라 에이디드의 세력을 공격하는 작전에 투입됐다． 에이디드는 유엔이 소말리아 주민에게 제공하는 구호식량을 갈취하고 있었다．

미군의 작전은 에이디드 민병대의 거센 반격을 받았다. 블랙호크 두 대가 격추되고 미군 19명이 전사했다． 처절했던 소말리아의 작전은 ‘블랙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이라는 영화로 생생히 그려졌다． 이 영화를 통해 블랙호크는 더욱더 상징적인 미군의 전투장비가 됐다．

지난 15일 이라크에서는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블랙호크 두 대가 충돌, 17명의 미군이 사망했다． 블랙호크 전투사에 기록될 만한 막심한 피해다．

항공모함·스텔스 폭격기·크루즈 미사일…． 이런 원격의 무기로 미군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적대적 정권의 무력을 상당부분 붕괴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보듯 전쟁을 마무리하고 무너진 적진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블랙호크 같은 ‘근접병기’를 동원해야만 한다． 여기에 블랙호크의 험난한 운명이 있다．

< 중앙일보 국제부 차장 김 진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11. 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