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곰 시사회 때 내가 다연장로켓인 구룡을 수동으로 발사시켰지요. 원래 자동으로 발사하게 되어 있었지만, 발사스위치 2개를 양 손으로 0.5초 간격으로 두드리며 56발이나 쏘았어요. 긴장이 풀린 탓인지, 배출가스 때문인지 다 쏘고난 후에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던 기억이 새롭네요.”

지대지미사일 `백곰', 함대함미사일 `해룡'에 이어 천마개발사업에 참여했던 진정석(55·秦正錫)박사는 1978년 9월의 백곰 및 구룡 시사회 당시부터 회고해 주었다. 진박사는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그때는 정말 무엇이든 다 만들어낼 것 같은 열의가 무내미(국방과학연구소가 위치한 지명)에 가득했다며 차를 한모금 마셨다. 그는 천마에 앞서 해룡에 대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비약적 발전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그건 비유일 뿐이지 기술에는 단계를 뛰어넘는 도약이라는 게 성립되질 않아요. 기술적 단계를 다 거쳐야 합니다. 백곰 개발 중에 해룡을 개발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천마의 실전배치는 그 시일이 훨씬 늦춰졌을지도 모릅니다.”

`해룡'(海龍). 이 이름은 백곰이나 현무처럼 귀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우리 미사일 개발사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단거리 함대함미사일의 명칭이다. 불운이라면 양산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군은 1975년 말께 프랑스에서 엑조세미사일을 도입, 시사회를 실시한 이후, 북한의 소형 함정을 타격할 소형의, 그리고 값이 저렴한 함대함미사일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관련 무기체계 획득을 위한 검토를 벌였다. 이에 따라 국과연은 78년 1월부터 백곰미사일 개발과 병행해 함대함미사일 기초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79년 말과 80년대 초의 격동기에 국과연도 크게 영향을 받아 백곰개량형(NHK-Ⅱ, K-Ⅱ) 개발 중단과 구조조정이라는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해룡사업은 탐색개발을 마치고 반능동 레이저미사일체계를 해군이 원하는 개발대상체계로 확정, 81년 9월부터 선행 및 실용개발에 들어갔다.

　그런데 연구팀이 추진기관·탄두·전자광학추적장치 등 구성체계에 대한 성능시험과 각종 비행시험에 박차를 가할 때쯤 `해룡'에게도 연구개발 중단지시가 내려졌다.

“사업을 종료해야 했지만 연구는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86년 말까지 자체 연구개발은 계속됐습니다. 그때까지 시험비행이 약 20회, 해군 주관 아래 발사시험 등 4차례의 운용시험이 성공적으로 실시됐습니다.”

실전배치 되지 않아 개발실패라고 보지 않느냐에 대해 진박사는 “그렇지 않다”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87년 1년간, 해군이 함정에 탑재된 시제장비를 운용했고, 87년 2월에는 합참에서 조건부이지만 해룡을 해군의 전투장비로 채택, 규격서도 확정했으므로 개발은 성공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진박사는 다만 백곰 미사일의 성공이 오히려 미사일 개발에 과신을 불러일으킨 데다, 소형 미사일에 대한 이해부족과 과소평가로 사업출발이 매끄럽지 못했음을 토로했다. 또한 값비싼 획득가격과 함께 반능동 레이저유도방식 채택에 따른 해상기후 환경에서의 작전운용성 저하 등도 양산에 이르지 못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본래 반능동 레이저유도방식은 명중률이 우수합니다. 그런데 해상기후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날이 썩 좋지 않은 날에는 표적탐지와 추적성능이 수학적 예측치보다 상당히 떨어집디다. 결과적으로 작전가능 거리가 10㎞ 에 훨씬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해룡은 양산에 돌입하지 못함으로써 `승천'하지는 못했지만 이때 획득한 기술들은 훗날 유사 분야에 직접 활용돼 천마개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해룡은 죽은 것이 아니라 바다속에 `잠룡'으로 살아 있었던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