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는 우리의 신화 속에 날개를 단 백마로서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로 나타난다. 타는 이가 장수면 용마가 되고, 신선이나 고매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면 날개 없는 백마가 된다. 천마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외경스러움을 느낀다. 서양에도 페가수스(Pegasus)라는 천마가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페가수스는 제우스가 뇌전(雷電)을 쓸 때 우레와 번개를 나르는 말로, 역시 전마(戰馬)의 상징이다.

이렇듯 신비스러운 능력을 지닌 천마가 한국형 단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의 이름으로 정해진 것은 89년 초. 국과연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모에서 선임연구원이던 김기용씨(현 미국 거주)가 제안한 `천마'를 선정한 것이다. 영문이름으로 초기에는 페가수스를 썼으나 현재는 우리말 영문표기법에 따라 `chunma'라고 쓰고, 다만 외국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페가수스를 병기하기도 한다.

이즈음 4인방의 일원인 체계실장 백홍열 박사(현 한국항공우주연구소), 3, 4일을 아무 일도 않고 생각에만 몰두했다. 백박사는 필요한 말만 가려하는, 말을 아끼는 편에 속하지만 연구진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아 그의 침묵은 드문 일이었다.

그는 사업책임자 박양배 박사가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참여시킬 만큼 국과연 내에서 손꼽히던 인재. 전공한 분야에만 정통한 것이 아니라 미사일 체계를 구성하는 각 분야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식견과 이해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는 “체계실장이 실제적인 기술연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연구논문 한 편 쓸 수 있는 시간적 여유 없는 보직이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천마사업에 발을 디디면서 내심 `제대로된 체계(시스템) 설계를 해보자'는 의욕을 가졌었다”고 말했다.

　백곰이나 현무가 전략적 개발사업으로 규모가 컸지만, 여러 분야가 이렇게 복합되는 체계는 천마가 처음이었다.

천마라는 종합적인 체계가 전투사단이고 구성요소가 되는 하부 체계(분야)를 연대 또는 포병대대 등의 예하 부대라 할 때, 그는 참모장 겸 작전참모였다. 예하 부대의 특성에 맞게 규모와 전투계획 및 일정을 단계별로 조정하고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선행연구 결과에 따라 개발방향이 정립된 시점에서 그가 이때 우선 해야 할 일은 예하 부대별 전투력과 수집정보를 종합, 작전요구성능(ROC)과 개발방향에 부응하는 개발계획서라는 구체적인 전투시행계획 및 절차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의 침묵은 바로 이것을 위한 몰입이었다. 침묵을 깨고 계획서를 제시했을 때 내용은 일단 총론적이었지만 구체적인 점에 연구진은 놀랐다. 점차 각 분야에서 올린 계획이 더해지면서 10권의 바인더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확대되었다.

국과연은 89년 6월 1일 연구진을 `천마사업단'(사업책임자 겸 단장 박양배 박사)으로 편성하고 대통령으로부터 사업 재가를 받았다. 이어 7월 1일 선행개발단계에 돌입, 백홍열 박사를 중심으로 작성된 개발계획서에 따라 94년 9월까지 분야별로 규격을 확정하고 설계 및 제작을 한 후 각 체계를 조립 완성해 종합적인 시험평가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최초 백박사의 개발계획서는 개발 진척도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는 여지가 많았지만 선행개발이 끝나갈 무렵 한 연구원은 이렇게 탄성을 터트렸다. “누가 만든 건지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았네.” 백박사는 그만큼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뛰어났다. 연구진은 그를 천마의 제갈량, 또는 장자방으로 여겼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