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참 신기한 것 같지 않아요 ?”

저녁 무렵 백홍열(50)박사는 추진기관을 담당한 김윤곤(51 ·金尹坤)박사에게 지나가는 말투로 고개를 갸웃하며 한 마디 툭 던져주고 갔다. 몇시간 전의 미사일 발사시험 실패에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참이었다. `비행 실패'의 와중에 미소와 함께 건넨 그 말은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크기와 무게가 미사일 전체의 70% 안팎을 차지하는 추진기관은 연소관·추진제·노즐·점화기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단순추력형으로 설계됐다.

시선지령유도방식에서는 이중추력형에 비해 단순추력형이 비행초기의 미사일 속도가 빨라 고속의 횡 방향 이동표적과의 교전에 유리하다.

연구진은 연소관을 마레이징강(Maraging鋼)으로 제작했다. 강하기로 소문난 독일의 `쌍둥이 칼'보다 강도가 훨씬 높다. 그러나 가공이 대단히 어려운 소재. 국내에서는 선진국 수준으로 개발돼 있지 않았다. 추진기관 개발초기 소재를 수입해 쓰다 독자개발을 시도했다.

심인옥 박사가 삼미특수강(현재 포철 창원특수강)과 함께 소재개발에 성공하고 은일상 박사가 (주)풍산과 예비 성형체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부터가 더 문제였다. 짧고 두꺼운 원통 관(管) 모양의 예비 성형체를 특수장비로 밀어내는 과정을 통해 길고 얇은 관으로 만들어야 했다. 마치 국수를 뽑아내듯 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았다.

삼성테크윈과 팀을 이룬 문순일 박사는 좀 길게 나왔다 싶으면 끊어지거나 주름이 발생하는 등의 실패를 거듭해야 했다. 결과는? 물론 해냈다. 연소관의 이 국산화는 미사일의 경량화·소형화를 이룬 성공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사례로 평가된다.

추진제로는 알루미늄이 많이 첨가된 것을 쓰는 현무와는 달리 무(無)알루미늄의 저연(低煙)추진제를 쓰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발생시키기 위해 추진제에 알루미늄을 수십 %정도까지 넣는데 알루미늄은 연기를 다량 발생시키고 많은 연기는 미사일 비행 중 지상과의 무선지령 교신에 방해가 된다.
유연추진제에 이미 상당한 연구성과를 가지고 있던 연구진이었지만 추진제가 일정속도 이상으로 일정거리의 목표까지 `힘을 내야 함'은 물론 `무선교신에 방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숙제를 풀어야 했다.

연구진은 우선 지상시험용 추진기관을 제작해 1989년 4월26일 첫 시험을 했다. 90년 2월28일까지 모두 8기를 지상연소시험한 결과 성공적임을 확인했다.

이어 비행시험에 사용할 추진기관에 대한 지상시험도 90년 8월24일 성공적으로 수행한 후 9월에 5기의 비행시험용 추진기관을 체계실에 제공, 11월21일 비행시험을 할 수 있었다.

이날 안흥종합시험장. 박양배 개발사업단장을 비롯해 미사일 분야 연구원 20여 명이 발사시험에 참여했다. 긴장 속에 모든 시선이 발사대에 집중돼 있었다. 이윽고 미사일은 화염을 짧게 뿜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런데…

“모두가 경악했습니다. 미사일이 곧장 날지 않고 마치 뱀이 날뛰듯 비행한거죠.” 시쳇말로 `지랄탄' 형국이 되어버렸다. 미사일이 조종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이다. 실패였다. 그것도 첫 번째에.

보통 비행 상태만 보아도 어느 분야에서 오류가 발생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지만 당장 원인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다만 저마다 `내 분야는 아닐 것'이라고 여겼다. 김박사 역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백박사가 알듯 말듯한 말을 건네고 간 것이다. 그는 허튼 말을 하는 이가 아니었고 그의 말은 그만큼 무게가 있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