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곤 박사는 추진기관 쪽의 검토가 필요하기는 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일순 `혹시 점화기에…' 하는 의심이 스쳤다. 동료들과 추진기관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기술적 문제를 밤새워가며 토론을 벌였다. 날이 밝자 김박사 등은 발사대 인근을 이 잡듯 샅샅이 뒤졌다. 미사일 발사 실패의 원인이 추진기관에 있다면 단서가 될 만한 무엇인가가 떨어져 있을 것이다. 손톱크기보다 작은 검은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흑연이었다. 추진기관에 이상이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점화기는 파이로테크닉(pyrotechnic)형으로 연소관 앞쪽에 설치돼 추진제를 연소시키는데 이때 발생되는 연소가스가 노즐을 통해 뒤로 배출된다. 흑연은 바로 이 노즐부분에 쓰이는 소재다. 연소 때 발생하는 열은 2700도 이상. 이 엄청난 고온을 견디는 데는 흑연이 적격이다. 그러나 충격에 약하다는 것이 치명적 단점. 이날의 원인은 노즐목에 생긴 아주 미세한 흠집이 고열에 그만 깨져 나간 것이다.

“이런 예는 없었습니다. 원인이 점화기가 아닌 노즐목에서 발생한 것도 의외였고요. 나중에라도 결국 원인을 찾아냈겠지만 그때는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단 한 번 발생한 사례라고 해서 흑연을 계속 쓸 수는 없는 문제고….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 소재를 강구했는데, 실리카 패놀릭이라는 복합내열재를 써서 해결했습니다.” (김윤곤 박사)

이 일은 극복한 사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천마개발사업단의 인화와 단결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평소 연구원들에게 “어느 한 분야가 맡은 일이라 할지라도 전체 체계 관점에서 다른 분야가 노력해 보완할 점은 없는지 항상 고민해 달라”고 주문해 온 박양배 박사는 “시험은 어디까지나 시험일 뿐”이기 때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원인을 찾아 해결하라고 한마디 할 만도 한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는 다그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이럴 때 일수록 연구원들 스스로가 심적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연구원들을 믿고 기다리는 것, 그가 지닌 특유의 기다림의 자세이다.

백홍열 박사도 직접화법 대신 간접화법을 택했다. 김박사 역시 흘려 듣지 않고 행간을 읽는 자세를 보였다. 이는 서로의 입장과 견해를 존중하고 양보하는 자세, 천마 연구진이 갖는 미덕이었다. 미사일의 경량화·소형화 문제로 각 분야간 이해가 엇갈리는 가운데에서도 `그렇다면 우리가 좀더 연구해보겠다'는 의지와 노력을 보이며 남다른 단결력을 과시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천마 연구진은 `천마가(歌)'를 노래하곤 했다. `와서 모여 함께 천마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천마가 되자…'. 1970 ·80년대 대학가 어느 뒷골목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며 불러봤을 노래. 어느 틈에 천마 연구진이 늦은 밤 술자리를 가질 때마다 함께 부르며 의기를 투합하는 `천마가'가 됐다.

추진기관의 안정성은 일찍 확인되었으나 94년 종합미사일 발사 후 지상과의 교신이 아주 짧은 시간 `톡톡' 끊기다 이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미사일을 통제하는 데는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 후 분출되는 가스가 적외선측각기와 미사일 사이에서 교신을 한순간씩 가로막는 현상으로 의심되면서 김윤곤 박사 등 추진기관 팀은 또 한 번 `발전을 위한 의욕'을 불태웠다. 추진제를 저연이 아닌 무연으로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저연의 추진제를 무연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연구과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 당시 국과연 내에서는 무연 추진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미사일 체계에 적용하지는 않던 상황이었다. 신기술이라면 신기술.

추진기관 팀의 무연 추진제 연구는 94년부터 더욱 본격화됐다. 적절한 추진제를 조성하기 위해 900회쯤 시험했을 때 성공의 감을 잡을 만큼 무수한 시험과 시행착오를 겪는 가운데 1000여 회의 시험을 거친 뒤인 1995년 후반기 천마 발사시험에 적용할 수 있었다. 발사된 미사일과 추적탐지 장치와의 교신이 끊기는 일이 없어지는 등 단 한 번에 `고품질'임을 확인했다. 천마의 신뢰성을 한층 높인 것으로 평가돼 96년 1월1일부로 공식 적용시켰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