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근옥 책임연구원을 비롯한 신관연구진은 1990년 7월 미국 해군연구소의 조우모의시험실에서 종합적인 성능 평가시험을 실시, 세계적 기술수준을 가진 그들로부터 연구개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발사시험 중 미사일이 구름 속을 지날 때 그 속에서 그만 탄두를 터뜨리는 실패를 경험하고 말았다. 신관이 짙은 구름을 목표물로 오인, 탄두를 기폭시켜 버린 것이다.

이는 최종적으로 표적을 확인하는 신관 내 표적탐지장치가 레이저를 조사(照射), 항공기라는 표적을 분명히 인식하는 과정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다. 적기는 낮과 밤, 그리고 기상상태를 가리지 않고 공습해 올 것이기에 표적탐지장치 역시 그 같은 `전투환경' 속에서 적기만을 분명히 가려내는 성능을 보유해야 한다.

구름 속에서의 실패사례를 보듯 햇빛의 세기에 따라, 또는 비·구름·안개 등도 목표물인 항공기와 유사한 신호크기로 레이저를 반사시킬 수 있다. 레이저의 신호크기가 표적의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신관 내부에 장착된 소형 컴퓨터 격인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계산해 내고, 그 계산이 가능토록 프로그램화한 것이 `신호처리 알고리즘'이다.

비·구름 속을 지날 때 신관이 오작동하지 않도록, 표적에 타격을 줄 수 없는 엉뚱한 위치에서 탄두가 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는 `신호처리 알고리즘'이 완벽해야 한다. 비 ·안개 ·구름 속에서 각각의 레이저 반사신호와 변화량을 측정,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한 후 이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이를 위해 거대한 시험시설을 이용한다지만 국내 여건으로는 어림 없는 일. 연구진은 기상변화가 심한 소백산에 올라 데이터를 구하기로 했다. 마침 소백산에는 천문대가 있어 전기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천막을 치고 일주일 동안 미명 무렵에 일어나 기상상태에 따른 수많은 데이터를 구해냈다. 1990년 한 번 실시한 것으로 부족해 91·92년 연속해 소백산을 찾아 귀중한 데이터를 축적, 마침내 우리 환경에 맞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그 결과 천마 신관은 태양에 의한 오작동을 예방하고, 비 또는 구름 속을 지날 때에는 그 농도를 파악해 표적탐지거리를 조정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적 항공기로부터 플레어에 의한 재밍을 피하고, 표적과의 거리와 조우 각도에 따라 탄두의 기폭지연 시간도 가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능도 완벽히 갖췄다. 이에 따라 천마 미사일은 표적과 조우 때 최적의 상태에서 탄두를 폭발시킴으로써 표적에 최대의 타격효과를 주는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1993년은 미사일 비행시험을 통해 선행개발 결과를 점검하고 성과를 가시화하는 천마 개발의 분수령을 맞는 시점이었다. 특히 10월에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종합시험이 계획돼 있었다. 매우 중요한 시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천마탄두와 같은 소형탄두는 수 ㎞ 떨어진 곳에 자리한 참관자들에게 그 폭발위력을 충분히 인식케 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대두됐다.

천마 연구진은 고민 끝에 다소 과장된 폭발장면을 연출, `극적 효과'를 이끌어내기로 했다. 이는 선진국에서도 연구개발 성과를 적극 홍보하는 차원에서 일반화된 방법이었고, 탄두 폭발 때 밝은 빛을 내는 섬광탄두가 필요했다.

개발임무는 탄두연구진이 맡았다. 연구진에게는 섬광탄두에 천마탄두의 폭발계열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천마탄두의 성능과 신뢰도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폭발계열의 최고 권위자인 권용원 책임연구원(사진)의 주도 하에 소수 인력만으로 전담 개발팀이 구성됐다.

그런데 권 책임연구원은 지병을 앓고 있었다. 과거 받았던 신장 이식수술로 인해 간기능이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였다. 병색이 완연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특유의 쟁이기질, 투철한 사명의식을 발휘했다. 그는 결국 섬광탄두 개발이 완료되고 비행시험용 시제품이 제작되는 시점에서 쓰러졌고, 44세의 일기로 운명을 달리했다.

연구소장(葬)으로 치러진 영결식 며칠 후 예정대로 미사일 비행시험이 열렸다. 대통령은 참석하지 못했지만 국방위 소속의 국회의원 ·군 지휘부 ·재계 인사 등 많은 참석 내빈들은 미사일 발사과정을 숨죽이며 주시했다. 10초나 될까. 표적을 향해 힘차게 발사된 미사일은 표적에 명중했고 그 순간 섬광탄두는 눈부시게 폭발했다. 천마의 모든 과정이 완벽히 가동, `선행개발 성공'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환호 또 환호. 그러나 거기, 연구진은 꽃불처럼 터져오르는 섬광 위로 보이는 권용원 책임연구원의 모습에 아무 말 없이 눈시울만 뜨거워지고 있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