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익 항공기를 모사해 실시하는 사격시험의 경우 표적기에 견인표적을 매달아 각각의 거리를 1.5㎞ 정도 유지, 비행시켜 사격하게 된다. 표적기는 이륙하기 전 지상통제소와의 통신을 통해 여러 항목을 점검하게 되는데, 이때 오동작 방지를 위해 견인표적의 노즈(nose) 부위에 전자파가 반사되지 않도록 코팅 처리된 덮개를 씌운다.

덮개는 표적기가 이륙하면 공력에 의해 저절로 벗겨지지만 한 시험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안 벗겨진 상태에서(지상에서는 파악할 수 없다) 견인표적이 송출됐다. 지상의 레이더가 반사신호를 감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견인 와이어마저 잘 풀리지 않아 표적기와 견인표적 간의 거리가 너무 짧아진 상황이 벌어졌다.

지상의 사격통제요원은 이때 희미하면서도 가까운 두 레이더 신호에 깜짝 놀랐다. 어느 것이 표적기이고 견인표적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상사태 발생. 통제요원들은 표적 식별에 진땀을 흘렸다. 사격지점까지 표적기가 오는 시간은 4~5분. 마하 0.4의 속도로 접근해 오는 표적기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졌다. 이 경우라면 미사일이 견인표적이 아닌 표적기를 직격할 것이었다.

이날도 예외없이 많은 군 고위 관계자가 천마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으로 참관 중이었다. 상황을 전해 들은 사업책임자 박양배 박사의 시선은 일순 고정됐다. 그는 사격을 강행할 것인가, 취소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했다. 표적기는 대당 가격이 3억여 원. 크기는 실제 항공기의 3분의 1에 불과, 명중이 100% 보장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3억원과 사격 실시의 갈림길에서 박박사는 낮고 짧게 지시했다. “사격 실시!”.

이윽고 미사일은 날아오르고 여지없이 표적기를 해상으로 떨어뜨렸다. 시험은 외견상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3억원을 날리기(?)까지의' 결과에 대한 문제의 소지는 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격을 못했다면 사후 발생할 문제가 더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격추된 표적기 잔해가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이 표적기는 그동안 시험을 수 차례 수행해왔다. 표적기 요원들은 이륙 전에 기체를 쓰다듬으며 시험 성공을 기원했으며 무사 귀환 때마다 견장 1개씩을 붙여주기도 했다. 관계요원들은 분신 하나를 잃은 듯 안타까워했다.

비행시험에는 2발의 미사일을 연속으로 사격하는 시험도 있다. 한 번은 첫 미사일이 견인표적을 명중시키고 두 번째 사격을 위해 표적기가 선회하는 중에 갑자기 천마체계의 전원이 꺼져 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장비에 어떤 이상이 발생한 것은 틀림없는 일. 황당하기도 했지만 더 당혹스러웠던 일은 이 모든 시험 진행과정이 참관자들에게 생중계 중이었다는 것이다. 말도 행동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캄캄해진 콘솔 화면을 보는 사격통제요원들은 참으로 캄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광기 선임기술원은 일단 표적기가 예상 고도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표적기를 멀리 선회토록 유도했다. 소요시간은 약 5분. 그 사이 요원들은 대책을 협의하면서 발생 원인을 추정, 관련 장비들을 교체하고 체계에 정상적으로 전원이 공급되도록 했다. 하지만 시험 가능 상태까지는 몇 분이 더 필요했다. 표적기 통제요원에게 같은 핑계를 대고 다시 선회할 것을 요청했다. 표적기가 재차 진입했을 때 견인표적은 미사일에 명중되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천마에는 `안전 묵살 기능'이 있어 미사일이 발사되면 사격 기능에 관련되지 않는 웬만한 고장에는 전원이 안 꺼지게 돼 있다. 미사일이 폭발해야 사격단계가 해제되고 이에 따라 실시간 진단프로그램이 수행된다. 이때 진단 결과 장비에 문제가 있으면 차단장치가 작동해 장비를 보호하고 고장 원인이 해소된 후에야 정상 작동한다.

이날 시험에서는 1차 발사 때 안전 묵살 기능에 의해 장비가 견디다가 미사일이 폭발한 후 전원이 꺼진 것이다. 요원들의 원인 추정은 정확했고 조치는 신속했다. 불과 10여 분. 그 짧은 시간의 내면에는 끊임없는 연구를 바탕으로 장비를 자신의 일부처럼 일체화하며 축적한 기술력과 노하우, 우리 것에 대한 강한 자신감과 믿음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덕조 책임연구원이 이광기 선임기술원을 가리켜 `보배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듯 천마 연구진에는 분야별로 그같은 인재들이 많았다. 장기간에 걸쳐 양성된 아주 소중한 인재들이….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