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적외선 광학계 개발도 첫 도전이었지만 열영상 신호처리 분야에서도 새로운 첨단기술에 도전해야 했다. 개념부터 달랐다.

“예전 TOD(전방감시용 열상장비)에 적용된 신호처리 기술들은 아날로그 중심의 기술이었고 대부분 하드웨어로 구현됐습니다. 그런데 2, 3세대 열상장비의 경우 디지털 중심, 소프트웨어 기반의 영상처리가 중요합니다. 개념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했습니다.”(송인섭 박사)

열상장비용 적외선 검출기는 소자(素子)들 사이의 출력 특성이 매우 불균일하다. 그래도 예전 1세대 장비들은 소자 수가 수십∼수백 개 수준이어서 하드웨어로 구성된 소자별 증폭기의 출력 특성이 일치하도록 증폭률을 각각 조정했다.

그런데 2, 3세대 열상장비의 검출기들은 수천∼수만 개의 소자를 사용한다. 따라서 하드웨어 구성을 통한 조정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하드웨어로 조정할 경우 평균적인 관측 조건에 맞춰 일치시켜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다른 관측 상태에서는 불균일성이 영상에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불균일 특성이 보정되지 않으면 영상에 줄이 생기거나 점 또는 심한 얼룩이 나타난다.

적외선 검출기의 불균일 특성은 표적과 배경의 복사에너지 차이, 즉 관측 상태에 따라 다를 뿐만 아니라 시간에 따라서도 불안정하게 변화하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그때마다 입사하는 영상정보를 이용, 실시간 적응형으로 보정해야 한다.

“적외선 검출기의 출력 특성을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고 엄두조차 나지 않았지만 선진국의 최신 연구 논문들을 통해 기본적인 개념을 정리하고 불균일 보정에 대한 독창적인 알고리듬을 개발해 나갔습니다.”(유위경 선임연구원)

신호처리가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의 하드웨어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계속 다른 방법의 알고리듬을 개발, 비교할 수 있는 장점은 있었다. 그러나 몇 달 간이나 컴퓨터에 매달려 소프트웨어 작업을 하는 것은 대단한 인내를 필요로 했다.

연구 결과 열영상의 히스토그램 분포를 이용해 표적 영상 온도에 가장 적합한 보정계수 산출, 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고유 알고리듬 개발에 성공했다. 보정 후의 불균일 지수는 보정 전의 60분의 1 수준인 0.1% 이하로 줄었고, 매우 균일하고 안정된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 또 이 결과로 기준 표적에 대한 분해 가능 온도차이를 기존 0.1도에서 0.05도 이하로 낮출 수 있었다.

한편 적외선 영상 신호들의 밝기 분포는 대부분 배경 중심에 밀집돼 있고 다른 하나는 표적 부근에 집중돼 있는 편중된 구조를 갖는다. 그래서 적외선 영상은 가시광선 영상에 비해 대조비(contrast) 성분이 매우 낮으며, 표적의 윤곽이 선명치 못한 특성이 있다.

따라서 열영상의 농도를 전 영역에 걸쳐 고르게 다시 분포하고 이에 대한 영상처리를 해야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물론 배경 영역과 표적 영역의 밝기 분포는 계절·기상·시간대별로 변화한다. 그래서 단순한 신호 이득 조절로는 표적 도출이 곤란하고 또 실시간 소프트웨어로의 영상처리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영상처리에 많이 이용하는 히스토그램 평활화 방식을 적용할 때는 다양한 열영상 표적 특성에 대해 그 성능을 기대하기 힘들다. 화질이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윤은숙 선임연구원은 히스토그램 가변방식 농도분포 변환기법을 독자적으로 개발해냈다. 수 개월 동안 컴퓨터와 사투를 벌이며 개발한 이 방법은 히스토그램 크기를 적절히 제한, 빈도 수가 큰 영역이 상대적으로 과도하게 펼쳐지는 것을 막는 방식이다. 다양한 관측 상태에서의 실험 결과 기존의 평활 기법에 비해 항상 선명한 영상을 획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레이저 분야의 연구를 담당하다가 뒤늦게 열상장비 연구팀에 합류한 박용찬 선임연구원은 인터페이스 기술확보에 크게 공헌했다. 열상장비는 단독 감시장비 형태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사격통제장비의 센서나 대형 무기체계 탑재체의 정보획득 센서로도 많이 활용되기 때문에 체계와의 인터페이스 기술이 대단히 중요하다. 박선임연구원은 운용체계의 원격제어 및 인터페이스 기술 확보에 주력, 짧은 기간에 완벽한 상호 통신체계를 확립했다.

연구팀은 기술 분야별로 일궈낸 성과에 다시금 자신감을 갖게 됐다. 연구 내용에 대한 설계 보고서를 작성하고, 결과를 논문으로 다수 정리해 국내외에 발표했다. 또 중요한 연구 결과들은 특허출원했다. 이때 적외선 광학·열영상 신호처리 분야에서 확보한 핵심기술들은 후에 국방과학연구소장이 수여하는 국방과학상 은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연구팀이 열상장비의 기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1998년 8월, 1998-8차 합동전략회의에서 ‘헬기용 전방관측 적외선장비’(FLIR：미니 해설 참조)의 작전요구능력(ROC)이 확정되면서 고심과 결단을 요구하는 계기를 맞은 것이다.

당시 헬기에 열상장비를 장착, 야간 작전 기능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소요군들의 공통된 관심사항이었다. 장착 요구된 각군 헬기의 기종은 달랐지만 합참이 이를 조정·통제해 한 종류의 열상장비로 장착하도록 ROC를 통합한 것이다.

연구팀이 응용연구 중이던 3세대 열상센서가 여기에 적합한 기술이었다. 또 이는 연구팀이 그동안 갈망해온 핵심기술의 일원화, 즉 ‘열상장비 한국형 공통 모듈’ 적용 개념과도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ROC와 개발일정 등을 검토한 연구팀은 결정적 문제점에 직면했다. 바로 전력화 소요 시기였다. 군이 요구하는 전력화 시기에 맞추기 위해서는 선행단계를 모두 생략한 채 2000년부터 체계개발에 착수해야만 했다. 그런데 핵심 센서인 열상 모듈은 1999년에야 겨우 응용연구를 마치고 비운영적 환경 하에서 기술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미 시험개발사업으로 TOD를 개발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연구팀은 응용연구만 마치고 즉시 체계개발로 뛰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화약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