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에너지탄의 새로운 관통자 소재로 등장한 열화우라늄(劣化 depleted uranium)은 원자력발전소 운영이나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해 천연우라늄을 농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찌꺼기이자 폐기물이다.

즉 천연우라늄은 우라늄235(U235)를 0.7%, 우라늄238(U238)을 99.3% 함유하고 있는데 이 천연우라늄에서 우라늄235를 분리하고 난 나머지 또는 핵 원료로서 우라늄235가 핵분열(연소)한 다음 사용 후 연료로 재처리할 때 생긴 폐기물이 바로 열화우라늄이다.

이 열화우라늄은 보통 콘크리트 등으로 포장, 폐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열화우라늄은 천연우라늄에 비해 우라늄235·우라늄238을 각각 0.3%, 99.7% 가량 함유하므로 열화우라늄은 핵적(核的) 성질 외에는 사실 보통의 우라늄과 같다. 따라서 천연우라늄과 마찬가지로 합금용 등 금속학적 용도나 연구·실험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열화우라늄이 군사용으로 주목받은 이유는 밀도가 티타늄·납·텅스텐보다 높고(무겁다는 뜻) 특성상 표면발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금속과 합금하는 등으로 재처리해 관통자로 만들면 텅스텐보다 무거우므로 관통 효과가 좋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목표물에 충격할 때 고열을 발생시켜 철판 및 주위의 물질을 태우는 ‘자기발화현상’을 일으킨다. 즉 장갑을 녹이며 관통하는 최상의 관통자가 되는 것이다. 텅스텐 소재 관통자보다 관통력이 10% 이상 우수하다.

열화우라늄은 이 밖에 값이 텅스텐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문제는 관통자가 장갑을 뚫을 때 ‘0.3%의 우라늄235’가 산화하면서 미세한 방사능 먼지가 대기 중에 날린다는 데 있다.

물론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하더라도 충격시 증발하기 때문에 방사능 낙진의 위험은 없다는 판단 아래 미군이 대량 보유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1991년 걸프전 이후 하나의 신드롬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도 열화우라늄탄을 연구한 바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을 거쳐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을 역임한 바 있는 한필순(韓弼淳·공사5기·예비역 대령)박사는 중앙일보에 회고록을 연재(1999년 11월21일부터 75회)하면서 열화우라늄탄에 대해 언급했다. 이 부분을 요약, 소개한다.

82년 3월, 12년 가까이 몸담아 온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떠나 대덕(大德)공학센터장으로 취임한 한박사는 이곳의 연구 분위기를 일신(一新)하며 연구열기를 불러일으켰으나 중요한 연구시설인 핵연료 정련·변환공장이 완공됐음에도 운영비가 없어 가동할 수 없었다.

한박사는 국과연 소장인 서정욱(徐廷旭·전 과학기술부장관)박사를 찾아가 “ADD 창설 멤버인데 대덕공학센터로 시집 보냈으면 지참금이라도 좀 줘서 보내야 할 것 아니냐”며 지원요청을 했다.

이때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는 ‘명분’을 찾아보라는 서박사의 권유에 한박사가 생각해낸 것이 열화우라늄을 소재로 한 관통자였다. 당시 구소련은 두께가 72mm나 되는 T-72 전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시점이었고 개발이 완료되면 북한에 실전 배치될 것은 뻔했다. 우리 군으로서는 이에 대비할 무기체계, 즉 독자적인 대전차 관통자가 필요했고 한박사가 이를 간파해ADD에 제안한 것이다. 물론 ADD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박사는 연구비를 받은 즉시 핵연료 정련·변환공장을 가동하는 한편 서인석·국일현 박사에게 관통자 개발 책임을 맡겼다. 개발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가장 큰 문제는 대전차 관통자의 핵심 재료인 금속우라늄(열화우라늄과 금속을 합금시킨 우라늄)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금속우라늄 합금 기술은 미국의 철저한 보안으로 접근 자체가 불가능했다.

서·국박사는 관련 서적과 논문 등을 토대로 금속우라늄 제조와 합금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천만다행으로 당시 대덕공학센터에는 78년 프랑스에서 구입한 100kW 용량의 ‘진공유도 용해로’가 있었다. 이는 진공 상태에서 우라늄을 금속으로 녹여 합금하는 시설이다.

지하실에 오랫동안 방치, 거의 사용하지 않아 아예 작동이 안됐던 이 용해로를 숱한 밤을 지새우며 수리한 끝에 연구에 활기를 띠게 됐다. 거의 1년 후 중수로(重水爐) 핵연료와 대전차 관통자 개발에 성공했다. 비록 시제품이라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는 사실은 커다란 의미를 가지며, 전두환 대통령이 대덕공학센터를 방문했을 때 보고되기도 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