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갑탄용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 (6)

1983년 고온고장력 항공재료의 하나로 텅스텐 소재를 연구한 것이 텅스텐 소재에 대한 국방과학연구소의 최초 연구였다. 미사일 추진기관의 노즐 인서트 재료로 사용된 텅스텐 - 구리(W-Cu) 합금 및 텅스텐 - 은(W - Ag) 합금의 재료를 제조하기 위한 텅스텐 골격체(W - skeleton·분자골격구조) 연구가 주류였다.

이때 철갑탄의 관통자용 텅스텐 중합금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었으나 기초자료를 조사·분석하는 수준이었다. 군에서도 철갑탄 자체에는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 관통자의 재료 연구·개발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낮은 편이었다.

풍산에서의 원료분말 문제는 이같은 관심과 연구의 전환을 가져왔다. 천길성(千吉成·국방부 획득개발과장·국과연 기술연구본부장 역임·현재 퇴직)박사를 비롯한 연구진은 철갑탄의 관통자 재료로서 텅스텐 중합금 연구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게 됐다. 그 첫 과제는 ‘텅스텐 관통자 소재 개발’. 시작 단계이니 만큼 연구를 위한 예산도 미미했고, 기술도 아직은 낮아 관통자의 파괴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성능향상을 위한 연구는 아니었다. 미국의 기술과 시설을 도입, 업체에 설비했으므로 우선 그 제조 조건과 공정부터 연구·분석해야 했다.

연구진은 당시 연구환경이 좋았다고 한다. 특히 백운형 박사는 “호사(?)스러웠다”고 표현했다. 아직은 소재동(棟)이 완공되기 전이어서 다른 팀은 실험실을 갖추지 못한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박사의 관심과 열정으로 공작실 한 켠에 실험실과 장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실험실 여건이 과연 호사스러웠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소재 연구팀에 비해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국과연 연구진이 직접 모형 등을 제작할 때 필요한 웬만한 가공장비가 들어가 있는 공작실은 가건물처럼 조립식이었다. 그러니 냉·난방은 물론 환기도 안되고 소음도 심했다. 이따금 돌아가는 기계의 굉음은 연구진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한겨울에는 1500도까지 가열하는 소결로(爐)의 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떨어야 했다. 더욱이 승용차도 일반화된 시절이 아닌 탓에 분석을 위해 광학현미경과 기초적인 분석장비가 있는 건물로 이동하려면 연구소 내를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등 불편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연구·개발은 장비싸움’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할 정도로 실험장비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지만 연구에 필요한 장비 하나하나가 고가여서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실험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3인치 열처리로(爐)와 박스형 열처리로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실로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열처리로들은 본래 진해기계창에 있던 장비였다. 이 장비들은 82년 말 국과연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 후 운용할 주인(연구원)을 잃어버려 그냥 쉬고 있던 상태였다. 마침 83년 진해의 소속 팀이 해체되면서 현재의 대전연구소로 온 노준웅(盧俊雄)박사가 진해의 실험실 사정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장비를 인수,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는 7단계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텅스텐(W)·철(Fe)·니켈(Ni) 등을 함께 넣고 균일하게 섞이도록 혼합하는 분말혼합(粉末混合·mixing) 단계다. 분말의 크기라든지, 여러 분말의 섞인 정도(혼합도)가 매우 중요하다.

2단계는 부품 형상으로 제조된 금형(틀)에 혼합된 분말을 넣고 적절한 형상을 만드는 성형(成形·compaction)이다. 압력에 따라 소결성에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모양에 따라 성형 방법도 고려해야 하는 특성이 요구되는 공정이다.

성형된 분말을 높은 온도로 고형화시켜 부품으로 제조하는 3단계 소결(燒結·sintering) 공정은 온도·시간 및 소결 분위기 등에 따라 재료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불량이 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단계다.

이어지는 열처리(熱處理·heat treatment)는 소결된 시험편(片)에 국부적으로 몰려 있는 수소가스·인(P)·황(S) 등의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재료 전체에 골고루 분산시켜 강도·연성·충격 특성을 부여하는 공정으로 소결에서와 마찬가지로 온도·시간 등에 따라 강도에 현격한 차이가 나게 된다.

관통자 재료는 열처리된 것만 가지고 사용하기에는 강도가 약하다. 때문에 대장간에서 칼을 만들 때 망치로 계속 충격을 가하면 더 단단해지는 현상을 이용하는 냉간가공(冷間加工) 과정을 통해 재료 내부를 기계적 방법으로 강화시킨다. 여기에 연성 또는 충격값 등의 저하를 최대한 방지하면서 냉간가공된 재료에 강도를 추가적으로 부여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효처리(時效處理·aging treatment)라는 공정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완성된 텅스텐 중합금 소재를 최종적 부품(관통자)으로 가공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