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갑탄용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 (7)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를 만들어 가는 7단계 공정, 즉 분말혼합(粉末混合)으로부터 성형(成形)·소결(燒結)·열처리(熱處理)·냉간가공(冷間加工)과 시효처리(時效處理)를 거쳐 최종 가공(加工)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국방과학연구소 실험실에서 진행됐다.

연구팀이 처한 열악한 실험시설과 장비에도 불구하고 모든 실험을 국과연에서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재료가 가진 용도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따라서 연구소 내에서의 실험을 통해 제조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파악한 후 제조업체의 양산시설을 이용, 확인함으로써 최종 실험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국내 보유기술은 텅스텐 원료분말 제조와 관련된 기술이 위주였던 관계로 새로운 텅스텐 중합금 소재 개발의 시작을 어디에서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개념이 명확치 않았다.

분말의 혼합과 소결 등 기본공정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자료도 없었다. 때문에 (주)풍산의 양산공정과 보고된 논문을 일일이 비교 대조해 실험계획을 세워 나가지 않으면 안됐다. 공장 한편에 설치한 실험장비를 가동하고 예비연습과 더불어 본격적인 텅스텐 관통자 재료연구가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당연히 물성(物性) 파악을 위해 데이터를 축적하는 실험에서 겪는 어려움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소결과정을 한번 보자. 잘 섞인 분말을 고형화하는 이 공정에서는 어떤 온도까지 어떤 속도로 올려(이를 승온속도라고 한다) 얼마 동안 유지해야 하는가와 승온과정 중 각 단계에서의 온도가 결정돼야 한다.

이 부분은 어찌 보면 단순노동이나 다름없었다. 3인치 열처리로 등은 요즘처럼 자동제어되는 장비가 아니어서 모든 작업은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했다. 분당 승온속도를 맞추기 위해 초시계를 들고 시간을 재어 가며 온도 제어기판에서 일일이 손으로 1도, 1도씩 올렸다.

이 작업은 한두 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또 일시 중단해 내일로 미룰 일도 아니었다. 일단 계획이 잡히면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때로는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했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식사도 순번제로 돌아가며 하는 등 전 과정을 다 지켜보아야 했다. 어렵게 실험하다가도 분당 승온속도가 조금만 맞지 않아도 실험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정말 길고 힘든 작업이 반복됐다.

실험 중 위험요소도 적잖이 도사리고 있었다. 소결과정에서는 폭발성 수소가스를 사용한다. 소결로에 시험편을 넣고 양쪽 끝을 고무마개로 막은 뒤 고무마개에 난 구멍을 통해 이 수소가스를 출입시킨다. 그런데 실험 초기에 가끔 수소 양이 적절히 조절되지 않거나 노에서 나온 수소를 태워 제거하기 위해 불꽃을 잘못 붙일 때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꽝”하는 폭발음 같은 굉음과 함께 장입된 시료와 고무마개가 양쪽으로 날아가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굉음에 놀란 것은 비단 텅스텐 소재 연구팀뿐만이 아니었다. 옆방의 연구원들은 실험실이 폭파되는 줄 알고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이기도 했다. 연구팀으로서는 그때 그보다 더 큰 위험이 염려되기도 했지만(지금도 물론 그같은 위험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실험을 주저할 수 없었다.

결국 실험실에는 인내라는 테스트 항목이 더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였고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세계적인 관통자 재료를 얻기 위해서는, 비록 이때에는 이를 의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에디슨의 말처럼 일찍부터 이렇게 99%의 땀이 요구됐는지도 모른다.

연구팀은 1989년까지 이같은 연구를 통해 텅스텐 중합금 관통자 소재의 안정적인 제조조건 및 제조공정을 확립하면서 외국의 기술을 완전히 우리 것으로 소화하고 어떤 면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는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원료분말의 불순물인 인(P)·황(S)·탄소(C)를 제어하기 위해 란탄(La)·칼슘(Ca)을 첨가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며, 열처리 후에 한번 더 강도를 높이는 시효처리법도 새롭게 적용하는 등의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는 이 당시 생산되던 날개안정철갑탄(K270)의 안정화 및 성능 개선에 기여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불순물 제어 방법 등 주요 성과를 국내외에 연구논문으로 발표하는 가운데 89년 8월6일 국과연 창설일을 맞아 국방과학상 은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90년대에 들어 연구팀은 이제 관통자 재료의 국내 개발을 목표로 도전장을 던졌다. 105mm 주포를 장착한 K1전차가 군 전차의 주력으로 전력화하는 상황에서 K270과 같은 90mm탄을 쓰는 전차, 즉 M48A5K 이전의 M48계열 전차와 M47전차는 이미 로(low)급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관통자와 소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