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정든 ‘돌고래’ 아름다운 퇴역




[사진설명] 계류중인 돌고래


“아쉽고 착잡하고, 그리고 뿌듯합니다.”

희끗희끗한 흰머리를 두어 번 매만지고 말문을 연 김흥열(58)책임연구원(責硏)의 감회는 지극히 짤막했다. 이미 두 달 전부터 예고된 자리였다. 그럼에도 20여 년을 돌아보는 그의 일성(一聲)은 지난 연말 첫 만남에서 보여준 유쾌했던 인상과는 달리 무척 신중했다. 어감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어휘와 어순도 그랬다.

김책임연구원은 두툼한 검은색 바인더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 놓고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흔한 바인더지만 남다른 무게감을 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내용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밀’로 분류되던 것이었다. 물론 본래의 자료에서 적잖은 부분들이 삭제됐을 터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해 온 비밀의 무게는 여전해 보였다. 이제 이 검은 표지가 막 열릴 참이다.

2003년 12월29일 월요일. 이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우리나라 무기체계 사상 가장 비밀스럽게 개발이 진행됐고 또 가장 비밀스럽게 임무를 수행한 존재는 무엇일까. 백곰·현무 이 두 지대지 미사일도 정답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이날의 주인공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이름은 적잖이 알려졌고 제인연감과 같은 세계적 권위의 군사전문지와 인터넷 일부 군사전문 사이트에도 확인되지 않은 제원과 사진이 실린 바 있다. 하지만 그 실물이 정식으로 군외(軍外)에 공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난해 9월 국회 국방위원회가 해군에 대해 국정감사를 가졌을 때 해군이 제공한 자료에 언급된 것이 고작이다.

무엇일까. 문제의 정답은 우리나라 최초의 독자 모델 잠수함, 바로 ‘돌고래’다. 2003년 12월29일. 이날은 이 돌고래라는 이름을 가진 소형 잠수함 1척(돌고래-051함)이 근 20년의 임무를 마치고 일선에서 물러나는 퇴역식을 갖는 날인 것이다.(공식 퇴역일은 12월31일)

진해 군항의 부두(서해대). 해군작전사령관의 주관으로 다른 해군 함정들과 함께 치른 퇴역식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됐다. 돌고래 개발과제 책임자였던 김책임연구원을 비롯해 박의동 박사·한광섭 책임연구원 등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진과 건조업체로 개발에 참여했던 코리아타코마의 기술진, 그리고 돌고래 역대 함장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김책임연구원 등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진은 퇴역식이 진행되는 동안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내심 저마다 아쉬움을 하나씩은 안고 있었다. 퇴역식이 끝난 후 돌고래를 다시금 둘러보면서 그 속마음을 하나씩 꺼내 보였다.

“곱게 키운 딸자식 하나 시집 보낸 듯한 기분이 엊그제 같은데….” 김책임연구원이 말을 꺼내자 “소형이라 근무환경이 열악한 데도 20여 년간 묵묵히 잘 운용해 준 승조원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한책임연구원이 말을 이었다. 차분한 대화 분위기 속에 해군장교 누군가의 “북한의 유고급이나 상어급 잠수함에 비하면 돌고래는 호텔 수준이고 월등히 우수한 성능”이라는 힘찬 목소리에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돌아서 나오는 길에 한책임연구원은 시인 이상(李箱)의 작품 ‘날개’의 한 구절 ‘박제가 돼 버린 천재를 아십니까?’를 떠올렸다. 돌고래-051함이 이제 바다가 아닌 육상으로 올라와 교육용으로 전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측은한 마음에 한책임연구원은 시선을 진해만 저 먼 곳으로 돌렸다.

돌고래는 300t급의 소형 잠수함이다. 규모 면에서 잠수함이 아닌 잠수정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같은 구분법보다 우리나라 자체능력으로 설계·건조해 운용한 잠수함으로 작전 및 정보용으로 활용이 가능한 최초의 독자 모델이라는 점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1985년 3월1일 취역한 돌고래-051함은 퇴역하기까지 조국 해양수호의 최일선에서 맡은 바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이전까지 잠수함을 건조·운용해 본 경험이 없었음에도 20여 년간 불미스러운 사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은 돌고래의 우수한 성능과 해군의 탁월한 운용능력을 말해 준다.

이진구 해군중령은 지난해 국방과학연구소의 격월간지 ‘무내미’에 돌고래 운용과 관련한 글을 기고한 바 있다. 여기서 이중령은 핵잠수함 함장 출신의 미 해군 지휘관이 돌고래를 보고 이렇게 평가했다고 쓰고 있다. “비록 규모는 작으나 현대의 재래식 잠수함(conventional submarine)으로서 갖추어야 할 체계(system)를 제대로 갖췄으며, 특히 다양한 작전수행능력이 매우 인상적(very impressive)이다.”

이렇듯 자랑스러운 잠수함을 개발한 연구진이 정작 아쉬움과 착잡하기까지 하다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돌고래를 개발하던 20년 전, 그때 그 투지와 정열을 갖고 계속 잠수함을 설계·건조하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면 지금쯤 세계적으로 중형급에 속하는 잠수함을 자체개발할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해외수출도 할 수 있었을 것이고….”(김흥열 책임연구원)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