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우리 해군은 함정 보유 총 톤수 면에서는 북한보다 월등히 우세했으나 연안작전에 적합한 빠르고 기동성 좋은 고속정은 오히려 북한이 앞섰다. 북한이 계속적으로 무장간첩을 남파시키던 시기에 해군은 국내 고속정 건조계획을 수립하고 국민들의 방위성금으로 재원을 충당키로 했다.

이렇게 해군본부 조함과(造艦課) 주관으로 건조된 국내 최초의 고속정이 ‘학생호’였다. 학생호는 첫 시험에서부터 목표 속력(40노트) 이상을 발휘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름철 휴가를 진해에서 보낼 때 다른 선박을 마다하고 이 학생호를 고집, 흐뭇한 마음으로 이용하곤 했다고 한다.

해군은 학생호에 이어 우리나라 최초의 알루미늄 고속정을 설계·건조하는 발전을 보였으나 내파성에 문제가 발생하는 등 조함기술의 한계를 보이곤 했다.

따라서 함정의 국내 개발 및 건조를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여러 기술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당시에 주어진 제도적 한계를 초월해 고급 인력의 확보가 시급했다. 그리고 기술지원과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단독적인 해군조함연구소의 설치 필요성이 조함 관련 요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거론되고 있었다.

마침 전력증강사업인 율곡사업이 시작되면서 신규사업의 기획에 착수했던 시기였고 합동참모본부는 해군의 조함 문제에 특히 관심을 갖고 해군에 대해 조함연구소 설립안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다. 해군은 작전참모부장(이종호 예비역 중장) 주관 아래 조함연구소 설립안을 수립, 74년 5월10일 합참의 승인을 받았다.

이 안은 국방부장관(서종철 예비역 대장)의 승인을 얻은 후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됐으나 과학기술처장관(최형섭 박사)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후 국방과학연구소가 대통령에게 율곡사업에 대해 통합보고하는 자리에서 당시 해군참모총장(황정연 예비역 대장)이 조함연구소의 필요성을 역설, 재검토가 지시됐다.

해군은 연구소 설립안을 재작성, 최형섭 장관에게 브리핑했다. 최장관은 조함연구소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 연구소를 군마다 갖게 되면 유지가 곤란하니 이미 설립된 국방과학연구소의 일환으로 설립해 군을 지원토록 하면 동의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우여곡절 끝에 75년 1월18일 해군 조함연구소를 국방과학연구소 분소(分所)로 진해에 설치하는 안이 과학기술처장관·경제 제2수석 비서관(오원철) 및 해군참모총장 간에 합의됐으며 76년 3월8일 진해연구소 설립안이 대통령의 최종 결재를 받았다.

마침내 76년 5월13일 국과연의 진해연구소가 창설됐다. 현재 2체계개발본부가 바로 진해연구소로 그동안 수차의 조직개편을 통해 2사업단·기술사업단 2부·제1연구개발단 2부·2연구개발본부 등의 이름을 가졌으며, 특히 보안유지를 위해 대전의 국과연을 ‘대전기계창’이라고 불렀듯 진해연구소 역시 한동안 ‘진해기계창’이라는 위장명(名)을 써야 했다.

진해연구소는 진해에 위치하면서 소속은 국과연에 두지만 해군 조함연구소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승인받았다. 이에 따라 김훈철 박사가 진해연구소를 지휘하는 부소장으로, 성낙도·손운택 박사가 부장으로 임명됐다.

해군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며 장기적으로 연구개발이 필요한 수중분야의 연구개발을 강조하면서 독일로부터 잠수함 기술을 습득한 해군요원을 파견시켰고 당시 국과연에서 71년 5월 이래 수행해 오던 해군 관련 연구과제 중 수중무기 함정평가를 담당하던 실(室)이 진해연구소로 통합됐다.

수행해야 할 주요 임무는 당시 수상함정 건조에 주력하고 있었던 해군본부 조함과와는 임무 면에서 확연히 달랐다. 주로 수중분야 핵심기술 연구 및 연구개발이었다. 이때 수립된 중장기 연구계획을 보면 1그룹은 해군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음향탐지·해양조사·항만방어와 같은 음향·탐지기능을, 2그룹은 어뢰·기뢰·잠수정·소노 부이(sono buoy) 등 수중병기류 개발을, 3그룹은 황정연 해군참모총장의 특별요구에 따라 해군전자장비의 현장지원과 벌컨포 함정화 및 20~40mm 수동포의 자동화 등을 수행하기로 돼 있었다.

이 가운데 어뢰와 기뢰는 이미 국과연이 추진하고 있던 연구개발사업으로 진해연구소 창설과 함께 업무가 인계됐다. 어뢰는 ‘상어’라는 이름 아래 74년 1월부터 미국의 MK44 어뢰를 대상으로 한 개발 가능성 검토에 따라 ‘KT-75 무유도 직진어뢰’의 개발이 추진되고 있었으며 ‘악어’인 기뢰의 연구개발은 75년 4월 정식 착수됐다.

한편 해군이 추진한 잠수함사업, 즉 프로젝트(Project) 540 잠수함 건조 획득계획은 75년에 사실상 무산됐으나 잠수함을 보유코자 하는 해군의 노력마저 좌절된 것은 아니었다. 해군은 예산이 적게 들면서 천해(淺海)작전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는 또 다른 소형 잠수함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