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1월 제4차 국방과학 기술심의회에서 돌고래 개발 사업이 승인됐다. 이에 따라 국방과학연구소(ADD·국과연)는 돌고래 개발에 핵심이 될 수 있는 연구개발팀(도표)을 편성했다.

이때 먼저 주목해야 할 인물이 당시 해군 중령과 소령이었던 김영수(67)박사와 김흥열 책임연구원이다. 두 연구원은 74년 1월부터 75년 10월까지 독일의 군항도시 킬(Kiel)에서 잠수함 관련 조선교육을 받고 귀국했다.

해군사관학교 14기로 임관(1985년 대령 예편)한 김박사는 귀국 후 해군조함연구소를 추진하던 해군본부 연구개발처에서 근무하다 진해연구소가 창설되면서 국방과학연구소로 발령받고 소형잠수함 개발사업 전반을 관장하는 ‘사업책임자’가 됐다.

김박사는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98년 퇴직하기까지 실장·부장·본부장·부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11개의 연구개발사업에서 과제 및 사업책임자를 맡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현재는 한국고덴시 기술부문 사장으로 활동하면서 한남대학교 객원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김박사가 국방과학연구소로 소속되는 일이 자연스러웠던 반면, 해군본부 조함과 소속이었던 김소령의 경우 국방과학연구소 진해연구소의 창설멤버가 되는 데 해군의 합의가 필요했다. 당시 해군 조함과는 고속정 설계에 한창 바쁠 때였고 유능한 인력이 아쉬웠던 상황이었다. 더욱이 향후 ‘구축함’ 설계를 위해서도 그러했다.

조함과장은 ‘구축함을 함께 하자’고 김소령을 설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박사에게도 김소령은 꼭 필요한 존재였다. 김소령은 “하드웨어에 대한 설계능력이 매우 우수했던”(김영수 박사) 것이다.

김소령은 독일 국방과학원에서 수업을 받을 때 중량보상도 하면서 압축공기에 의해 해수를 긴급 배출 가능한 중량보상탱크가 있는 잠수함 단면을 설계하라는 문제를 멋지게 풀어내 교수와 동료(엔지니어)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잠수함을 보지도 못했으며, 구조설계에 대한 기초이론을 겨우 알아들었을 정도였던 김소령은 동료들 모두가 구태의연한 설계도면을 답안으로 제시했을 때 205·206급 잠수함의 중안단면도와 같은 설계도면을 내놓았다. 교수는 독일 엔지니어에 대해 실망의 눈빛을, 한국의 젊은 장교에게는 경이와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김소령은 해군본부 옥상에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구축함이냐, 잠수함이냐. 그는 귀국 전 을씨년스러웠던 10월의 킬 군항에서도 같은 고민을 했다. 그곳에서 205 잠수함의 단면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 돌아가서 잠수함을 설계해 독일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겠다던 결심, 그 자신과의 약속이 다시 뇌리에 떠올랐다. 결국 조함과장은 ‘잠수함을 하겠다’는 김소령을 국방과학연구소로 보내야 했다.

김박사와 선임연구원으로서 과제책임자로 잠수함에 대한 개념설계를 주도하게 될 김소령 등 연구팀은 개발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돌고래’라는 사업명칭도 이즈음에 나왔다.

“사업을 대외적으로 위장할 이름이 필요했는데 돌고래의 모습이 물 속에서 가장 빠르게 기동할 수 있는 체형인 데다 잠수함과도 외형이 흡사하다는 데 착안, ‘돌고래’로 하자는 연구원들의 의견일치를 보아 그렇게 정했습니다.”(김영수 박사)

77년 5월10일 작성 완료된 연구팀의 연구계획서는 국방과학연구소 자체 연구업무심의회의 검토를 받았다. 이에 따르면 국방과학연구소는 잠수함 관련 기술확보 계획을 3단계로 구분, 수립하고 있었다. 1단계는 자체 설계기반 구축단계다. 77년부터 86년까지 돌고래급 소형 잠수함을 설계·건조해 재래식 관련 설계기술을 확보하는 시기로 보았다.

2단계는 잠수함 설계기술 발전 단계. 87년부터 94년까지 2000년대 초에 보유하게 될 차기세대 중형 잠수함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고 소요 핵심기술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잠수함 설계 관련 기술을 완전히 우리 것으로 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3단계는 95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한국형 차기세대 중형 잠수함을 독자 설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구상이었다.

세계의 평화를 받쳐 올리고 있는 돌고래 로고(사진)에서 보듯 연구팀이 야심만만하게 수립한 계획,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보면 잠수함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1단계에서 그치고 만 아쉬운 계획이 아닐 수 없다. 이유는 돌고래 이후의 해군 잠수함에 대한 획득 계획이 앞당겨졌기 때문이며, 그 결과가 ‘장보고’급 잠수함이다.

김박사가 진두 지휘하는 돌고래 연구개발팀이 77년 7월부터 1년간의 계획으로 개념설계에 들어가면서 잠수함을 건조할 조선소도 코리아타코마(1999년 3월 한진중공업으로 합병)로 결정됐다. 코리아타코마는 그때까지 고속정을 다수 건조해온 방위산업체로 돌고래 건조업체로의 결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코리아타코마의 김종락 사장은 잠수함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었습니다. 결국 무산됐지만 김사장은 한때 개인적인 차원에서 540t급 잠수함을 한·미 프로그램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었습니다.”(김영수 박사)


▲ 이병형 장군과 잠수함

"돌고래 개발에 많은 분이 힘을 보태 주셨습니다. 특히 1973년에 합참본부장을 지낸 이병형(李秉衡)장군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분은 강한 의지로 일찍부터 '우리 힘으로 자체 설계·건조한 잠수함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셨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김영수 박사는 이장군이 육군뿐만 아니라 해·공군의 전략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회고했다. 김박사는 이장군이 일본군의 발전사를 비춰 보며 "우리나라가 크려면 해군이 발전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잠수함의 전략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기억한다. 무엇보다 이장군은 각국 무관에 전문을 보내 잠수함 설계·건조와 관련한 교육훈련과정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독일로부터 가능성을 회신받은 후에는 73년 당시 해군본부 무기체계 담당관이었던 김박사가 교육과정 사전 준비차 독일로 출장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것은 잠수함 개발에 있어 구체적인 최초의 지원이요, 의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병형 예비역 중장은 47년 육사4기로 임관, 6·25전쟁 당시 대대장·연대장으로 참전했으며 휴전 이후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승진부대장·합참본부장·2군사령관 등 군 주요 직위를 역임했다. 금성충무훈장·금성을지무공훈장·2등보국훈장 등을 받았다. 참전 경험을 토대로 야전지휘관의 지휘철학을 담은 '대대장' '연대장' 등의 저서를 남겼다. 초대 전쟁기념관장을 지냈으며 2003년 9월23일 77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