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소형이라 할지라도 잠수함 개발을 위한 국내 연구개발 및 기술적 능력을 검토한 결과는 한마디로 암담했다. 철판을 녹여 붙여 선체를 만드는 수준에서 잠수함 건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은 형편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는 어려움 속에서도 불가능을 생각하기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이 강했고, 그 신념은 여러 방면에서 도전으로 이어져 끝내 실현한 사례가 많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진해기계창, 즉 진해연구소는 최초 배터리를 생산하다 창원공업단지로 이전한 진해전지(주)가 쓰던 20년도 더 된 단층 목조건물을 이용했다.

연구원들이 연구를 수행하는 그 속의 연구실은 여섯평 남짓한 데다 설계와 연구를 위한 설비래야 설계용 T자와 드래프터(drafter) 하나가 고작이었다. 물론 이 건물 바로 옆에서는 이듬해면 입주할 새 연구동(棟)이 한창 공사 중이었다.

연구인력 기반 역시 빈약한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이다. 돌고래 개발사업의 책임을 맡은 사업책임자 김영수 박사와 과제책임자 김흥열 책임연구원 외에 연구팀에 소속된 한광섭·이헌곤·박의동·서인준 연구원은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소원이었고 과학장교였던 이상정·임경식 연구원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사실 잠수함을 타 보기는커녕 실물을 구경조차 한 적이 없었다. 잠수함에 대한 기본교육을 받고 유사 함정 건조 현장에서 함정 건조기술부터 우선 습득해야 했다(연구인력은 매년 늘어나 81년 말 국방과학연구소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기 전까지 28명까지 늘어났으나 역시 늘 신입이었던 탓에 인력양성은 돌고래 연구팀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됐다).

연구팀이 수행해야 할 설계는 잠수함의 윤곽을 그려 내는 개념설계, 조선업체와 맺는 계약설계, 실제 건조에 들어갈 함정을 세부적인 면까지 수치적으로 표시하는 상세설계 등으로 진행된다.

개념설계는 함정 건조에 필요한 요소마다 적용 가능한 여러 방안을 도출하고 그 장단점을 분석, 최선책을 찾아내는 일이다. 많은 인원이 투입되지 않고 도면 또한 개념적이어서 스케치 정도의 10여 장에 불과한데 연구팀의 건조 방향과 의지, 나아가 철학까지도 깃들어 있는 가장 중요한 단계다.

그런데 국내 개발을 위한 기술수준을 점검했지만 아직 설계에 돌입할 단계는 아니었다. 개념설계에 앞서 기술적 접근 방법과 함께 해군의 작전적 요구 사항과 운용 개념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선 고려해야 할 설계 기본조건을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설계 기본조건 판단은 잠수함의 특성과 관련된 지극히 일반적 사항이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항들로서 다음과 같다.

첫째, 수상함 및 잠수함에 대한 어뢰 공격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둘째, 정확하고 은밀하게 기뢰 부설이 가능해야 한다. 기뢰의 탑재 및 부설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고 부설시 소음이 발생하지 않아야 하며 수중에서 잠망경을 사용하지 않고 부설 위치 기점이 가능해야 한다.
셋째, 수면상에 부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뢰 및 기뢰를 탑재하고 요구해역까지 항해하며 작전에 임할 수 있도록 항속거리가 길어야 한다.
넷째, 작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빠른 수중속도가 요구되며 일정시간 이상 배터리 재충전 없이 계속 수중 항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요구 작전기간 지속작전이 가능토록 충분한 공간과 거주시설이 확보돼야 한다.
여섯째, 수중 항해시 소음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방음장치와 수상함의 폭뢰 공격을 받았을 때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도록 충격 흡수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일곱째, 수중 전속도 범위 내에서 속도 조절이 가능하며 특히 저속에서 효율이 높은 추진 방법을 갖춰야 한다.
여덟째, 수중 최대 작전수심이 적에게 인지당하지 않도록 가능한 한 깊어야 하며 전 작전수심 범위 내에서 모든 장비가 원활히 작동되고 어뢰 공격 또한 가능해야 한다.
아홉째, 적 함정의 동태파악 및 상황정찰을 위해 우수한 음탐 장비와 전자전 장비를 갖춰야 하며, 마지막으로 위의 모든 사항을 만족시키면서도 적의 음탐 장비에 탐지되지 않도록 선체의 크기가 작고 천해에서도 효과적인 작전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선체의 높이가 낮아야 한다.

연구팀은 그러면 기술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이 부분부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됐다. 우선 선형, 즉 잠수함의 형태, 특히 어뢰발사관을, 수압을 받는 압력전체의 내부 앞부분에 부착시켜 어뢰를 장착토록 해야 하는지, 아니면 압력선체 외부양측에 부착·발사토록 해야 할 것인지부터 결정했다. 소형 잠수함의 경우 어뢰를 압력선체 외부에 장착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리고 수중함의 선형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제일 먼저 연구돼야 할 분야인 수중 형상에 따라 수중 저항이 어떻게 변화하며, 유체 동력학적인 운동 특성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예측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는 유체 역학적 분야 등 여섯 분야에 대해 중점 연구키로 했다.

무엇보다 보유하고 있던 기술 자료인 이탈리아의 잠수정과 독일의 프로젝트(Project) 540 잠수함 및 독일 206 잠수함 설계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국외 전문 업체 및 기관을 방문, 자체 작성한 설계 사양에 대한 기술 토의 등으로 기술적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 중요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