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학연구소의 진해기계창(진해연구소의 위장명)이 임시로 사용한 옛 진해전지(주)의 낡은 건물은 지금 해군회관 자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비록 허름하기는 했지만 오늘까지도 연구원들에게 어려운 시절의 많은 추억을 일깨워 주는 한 요소가 됐다.

1976년 5월부터 78년 12월까지 초대 본부장을 지낸 김훈철 박사의 회고에 따르면, 이 건물은 소방서에서 화재의 위험이 있다 해서 철거령이 내려진 상태였고 더욱이 그 위치가 매우 낮은 지반(地盤)으로 매립지라는 것도 연구소 측은 처음에는 몰랐다.

이때 국방부의 기획실 제1국장은 최근 대구광역시장을 지낸 문희갑(文熹甲)씨로 국방예산을 통제하기 위해 경제기획원(지금의 재정경제부)에서 파견된 국방부의 유일한 민간인 국장이었다.

그는 진해연구소의 예산집행에 앞서 현장검증을 위해 진해를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다. 보안대에서는 기밀사항을 보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으나 김본부장이 “책임지겠다”며 일축해 버렸다.

김본부장은 문국장에게 브리핑을 해야 했지만 마땅한 공간이 없었다. 바닥에 앉아 설명하면서 “돈이 생기면 저 앞에 연구소를 짓겠다”고 말했다. 문국장은 물조차 새는 낡은 건물이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김본부장의 설명에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국방부로 돌아와 곧바로 자금을 허가했다.

이런 가운데 돌고래 연구팀의 개념설계는 계속됐다. 야근할 때면 현관을 놔두고 연구실 창문을 훌쩍 뛰어넘어 인근 구멍가게에서 ‘맛동산’ 같은 과자와 음료수를 사들고 들어와 간식으로 즐기며 밤을 지새곤 했다. 한 여름에는 근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등목과 샤워를 하며 더위를 잊고 연구 삼매경에 빠질 수 있었다.

특히 담장 너머로 신축하는 연구소 본 건물의 모습은 연구원들에게는 연구 못지않은 즐거움이었다. 이들은 대학을 막 졸업하고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정기간 근무하면 병역의무를 대체한 것으로 인정받는 이른바 특례보충요원들이었다.

모든 것이 이들에게는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박의동 박사에게는 국방과학연구소 소원으로서의 자긍심과 업무의 막중함을 크게 느끼는 일이 생겼다. 바로 연구소의 본관이 준공되면서 개관식을 갖는 날, 77년 9월23일이었다. 박박사는 개관식 상황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희들은 연구소 건물 앞에 도열하고 있었는데 당시 해군참모총장·해병대사령관·해군작전사령관 등 인근 육·해군 부대의 고위 장성들이 상당수 참석했습니다. 연구소 내 주차장이 협소해 다수의 장성급 초청인사들이 연구소 밖에서 내려 걸어들어와 착석하고 있을 때 서울에서 헬기로 장관님하고 함께 출발한 심문택 소장님께서 헌병 차량의 선도를 받으며 당시 서종철 국방부장관과 같은 차로 도착했습니다. 그 시절의 연구소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얘기지만 당시에는 전반적인 처우도 좋았지만 그보다도 연구소의 높은 위상과 연구소원들에 대한 존중의 분위기 등으로 연구원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고 정말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행사 때 참석하는 주요 인사의 이동수단을 보면 그 ‘급’을 알 수 있듯, 당시 국방과학연구소장에 대한 예우는 군에서의 장관(將官)이 아닌 정부 중앙부처 ‘장관’(長官)급이었다. 그러나 80년대를 거치면서 차관급, 3성 장군급으로 점차 격하되고 지금은 군의 의전서열로 볼 때 국장 및 소장급 가운데 첫 번째다. 우울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연구팀은 78년 말까지 개념설계를 수행하면서 여러 종류의 대상 함형에 대해 연구·분석했다. 그 가운데 선형, 추진, 조종 및 함작동 시스템을 500t급 잠수함과 유사한 시스템으로 설계했다.

압력선체 밖 외부선체에 무장을 설치해 압력선체 내부 공간을 크게 함으로써 승조원의 거주성을 높이고 선수부(船首部)에 탈출구를 두어 수중에서 승조원의 탈출 및 귀환을 가능케 구상했다. 또 서해와 같은 천해(淺海)에서 포복잠행(Creeping)할 수 있게 강한 스케그(Skeg)를 선미(船尾)에 두고 수직타를 추진기 뒤에 두도록 설계한 함형을 최적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지난 회에서 설명했듯 국내 기술력이 열악한 형편에서 완전한 독자개발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수 없었다. 당연히 충분한 기술력을 지닌 외국업체와의 협력이 검토됐다. 이에 따라 개념설계 기간 중인 78년 2월, 사업책임자 김영수 박사와 과제책임자 김흥렬 선임연구원(현재 책임연구원)이 독일 IKL사(社)를 방문해 GABLER 교수와 우리가 설계한 개념 설계에 맞도록 프로젝트(Project)70 잠수함을 한국형화(化) 하기 위한 기술지원 및 협조에 관해 협의했다.

하지만 여러 여건을 감안해 볼 때 독일로부터 돌고래 설계 기술을 지원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IKL사 입장으로는 독일 HDW사 및 영국 빅커스사(VICKERS社)와 협의해야 기술제공이 가능했고 한국에 2~3인의 전문가를 파견해 기술지원 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IKL사의 컴퓨터와 설계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분야별로 IKL사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이때 독일에서 한국형화(化) 하는 설계를 해야 한다면 소프트웨어 개발 및 시작정(試作艇) 1척 건조에 약 5000만 마르크(2500만 달러) 정도가 소요되는 것도 보통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IKL사 방문은 국방과학연구소 자체 개발만이 유일한 돌고래 개발 방안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결과적으로 돌고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순수 국내 기술진에 의해 설계됐으며 우리 해군 요구에 맞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세계에서 유일하며 완전 독자형의 소형 잠수함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