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연구팀이 1978년 11월 해군본부에 개념설계 결과물인 개념설계 보고서와 최고 수준 소요서 등과 함께 최고 수준 소요예산을 송부하면서 해군 예산에 반영해 달라며 제시한 돌고래 시작함(試作艦) 건조 예산은 어뢰 발사관·사격통 장치를 포함해 건조비 92억6000만 원, 수리 예비 부품비 3억 원, 시운전 및 시험평가비 4억 원 등 모두 99억6000만 원이었다.

그러나 해군은 이 예산을 댈 수 없었다. 그 까닭은 표면적으로는 향후 수년간 해군 전력증강 추진계획을 연차적으로 작성한 중기계획에 관련 예산을 사전에 반영해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을 좀 더 들여다보면 국방과학연구소(이하 국과연)가 주도하는 시작함 개발의 성공 여부와 실용성에 해군이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가 있었다.

“함정용 볼트와 너트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국내 산업기술 수준에서, 더욱이 잠수함을 전문으로 배우지 않은 입소 2년차 연구원 10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으로 고도의 정밀성을 요하는 잠수함을 국내 자체개발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군들 쉽게 믿으려 했겠습니까.”(박의동 박사)

또 하나 이유는 해군이 잠수함을 운용한 경험이 없다는 것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해군본부 조함실(현 조함단) 역시 잠수함과 관련, 기술적으로 관여할 인적·기술적 기반이 약했다. 돌고래 연구팀이 제시한 개념설계에 대한 작전평가 결과도 회답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때문에 만약의 경우 책임론이 제기된다는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해군 예산으로 시작함을 건조할 경우 훗날 반드시 이 시작함을 전력화해 작전에 투입·운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패한다면. 그때는 연구개발 기관인 국과연과 함께 예산을 투입한 해군이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김흥열 박사)

누구도 명쾌히 예산 투입을 결정하기 어려운 이 같은 상황에서 당시 해군참모총장은 국과연이 돌고래를 만들어만 준다면 흔쾌히 받아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고 국과연 지휘부의 입장 또한 사실 그때까지 그렇게 적극적인 편은 못됐고 기대도 크지 않았다.

77년 개념설계 착수 당시 81년까지 반영된 돌고래 개발 총예산은 시작함 건조비가 제외된 연구비만으로 총 6억 원이었는데 이것은 ‘잠수함을 연구한다고 하니 이 예산으로 관련 연구나 한 번 해 보라’는 정도의 관심이었다.

따라서 연구팀으로서는 개념설계에 사용된 7000여만 원을 제외한 5억3000여만 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연구개발의 지속성 여부와 성패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구팀은 개념설계 후 기본설계를 진행하면서 이 금액 중 단 한 푼도 헛되지 않도록 알차게 쪼개 쓰면서 국과연 지휘부에 개발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기술적 확신을 줄 연구 성과를 올려야만 했다.

이를 위해 사업책임자 김영수 박사와 과제책임자 김흥열 책임연구원은 연구원 각자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개인의 능력에 맞게 연구과제를 정확히 부여하는 등 짜임새 있는 연구인력 운영을 위해 만전을 기했다.

이때 돌고래 건조 계약업체인 (주)코리아타코마 조선소에서 돌고래 개념설계에 따라 약 1년 동안 제작해 온 돌고래 모형(사진)이 연구팀에 전해졌다. 본 설계안의 5분의 1 크기로 아크릴로 만들어졌다.

국내 최초의 국내 잠수함 모형이 된 이 아크릴 모형은 축전지·모터·디젤 발전기 등 각종 탑재장비와 주요 배관을 연결, 압력선체 내에 설치하고 일반 배치의 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 시뮬레이션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독일 등 잠수함 설계 관련 선진국에서도 즐겨 사용하던 방법이다.

“벌써 실제 돌고래가 다 만들어진 양 마음이 설？습니다. 어쨌든 이 모형을 통해 잠수함 내부의 구획과 장비들의 배치 상태를 입체적으로 한눈에 볼 수 있었지요. 실제 크기의 배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서 공간 개념을 검토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됐습니다.”(한광섭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이 모형을 통해 발사관의 위치와 선수 소나의 위치관계를 파악, 소나의 위치를 돌출형으로 수정했으며 탈출 탱크의 크기 및 위치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고 거주실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침대와 소파를 겸용으로 쓰는 방안 등을 도출해냈다. 무엇보다 이 모형은 소형 잠수함을 처음 접하는 외부 인사에게 설명, 이해를 돕는 데도 편리하고 유익한 역할을 수행했다.

돌고래 건조를 위한 주요 장비와 핵심 기술 연구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본래 연구팀은 돌고래 설계와 함께 건조에 필요한 핵심 기술과 주요 부품에 대한 연구개발을 병행하고 있었고, 그 결과를 지속적으로 설계에 반영하면서 설계를 구체화해 왔다. 그 결과 국과연 지휘부는 기술적 위험 요소가 점차 해소돼 설계 내용이 구현 가능한, 즉 현실성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건조사업 추진을 위한 대통령 재가를 서둘렀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