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 건조사업 재가를 위해 모두가 발 벗고 뛰던 1979년 가을. 이때까지 재가를 향한 항진은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었다. 그런데 누구도 예상치 못한 충격의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바로 대통령 시해 사건, 10·26 사태였다.

나라 안팎을 휘몰아친 충격, 국방과학연구소(국과연)에 큰 기대와 함께 신뢰를 아끼지 않던 제1의 후원자 대통령이 서거한 이 사태로 인해 국과연이 받은 충격 또한 대단히 컸다. 또 이 사태는 향후 벌어질 사업과 연구원에 대한 구조조정을 이때부터 예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시에는 그것을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미래는 일순간에 불확실로 돌변해 버렸다. 연구팀은 혹시 사업 재가를 받지 못해 돌고래 건조사업을 착수조차 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공들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이때까지 연구팀의 연구 성과는 실로 대단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과정과 다를 바 없었다. 핵심 기술로 꼽히는 연구개발만 14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선박과 관련한 계산을 전산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수중 함정에 대한 선박 계산은 수상 함정에 비해 몇 가지 특징적 내용이 추가돼야 한다. 즉 수중 또는 수상에서 직접 부력을 갖는 부분인 압력선체의 체적과 밸러스트 탱크의 유체 정역학(靜力學)적 자료를 구하는 계산을 해야 하고, 수중에서 해수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구역(free flooding area)을 포함한 선체 최외곽 형상이 3차원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계산도 새롭게 해야 한다. 연구팀은 79년 초기 기본설계기간 중 돌고래 전용 선박계산 프로그램인 ‘폼’(form)을 개발했다.

또 돌고래의 조종성에 대한 연구가 필히 수행돼야 하는데 79년 미국에서 수중 평면 강제 운동 시험장치(Sub PMM)를 도입, 한국선박연구소에 설치한 후 79년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에 걸쳐 5대1로 축소된 FRP 모형선으로 조종성 시험을 수행했다. 이는 유체 동력학적 계수값을 찾아내고 이를 검증하는 방법이다(시험은 82년까지 계속됐다).

78년 11월 수상선용 예인 장치를 개조해 5대1 목제 모형선에 대한 수중·수상·스노클 상태의 저항 측정시험을 실시, 수중함의 저항을 정확히 추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또 돌고래가 수면 하(下) 스노클 상태에서 파도를 만났을 때 스노클이 가능한 파도 높이와 이에 따른 스노클 수심을 얼마로 해야 하는지 등 당시에는 연구가 거의 없던 수면 하에서의 파중 운동해석 연구를 수행했다.

이 밖에 압력선체의 원통형부·원추형부에 대한 응력 및 강도 해석을 위한 전산 프로그램 개발(구조해석 분야), 잠수함용 추진기 설계, 자항식 어뢰 발사관 내에서의 어뢰 운동 해석, 진동·소음·충격이 함 외로 전달되는 것을 감소시키기 위한 탄성 마운트 연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주요 장비 개발 면에서도 돌고래의 조종과 관련된 각종 장비를 실제와 동일하게 동작토록 하는 조종훈련용 시뮬레이터도 79년부터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으며, 흡입공기에 대한 유속 및 유량 등을 계산해 스노클 장치를 독자 설계했다. 특히 어뢰 발사관과 기뢰 부설 장치도 시제품으로 어뢰 발사시험 및 기뢰 부설시험을 수행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었다. 79년 11월까지 초도 양산해낸 주추진 배터리의 경우 독일 바르타(Varta)가 제시한 용량보다 10% 이상, 개발목표치보다 15% 이상 우수한 것이었다.

이 같은 연구 성과가 일순간에 물거품이 될까 김영수 박사 등은 재가받을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대통령 시해 사건의 충격은 날로 더해갔다.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외에 국방부 역시 장관이 경질 위기에 있었다. 하루하루 급변하는 국내 정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김박사는 국과연 지휘부에 재가서에 대한 결재를 무조건 올렸다. ‘눈치 없는 일’이라 해도 별다른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윽고 79년 11월11일 김박사는 국과연 심문택 연구소장을 찾았다. 착잡하고 긴장된 마음을 애써 누르고 돌고래 건조사업과 관련해 개발계획 등 관련 제반사항을 차분히 설명했다. 얼마의 시간을 느낄 필요도 없이 김박사가 심소장의 얼굴을 보았을 때 ‘아, 됐다’는 직감을 얻었다. 그의 반응은 명료했다. 심소장은 “좋습니다. 우리 한 번 해 봅시다”라며 흔쾌히 결재안에 사인한 것이다.

이 시기 대통령 유고시에 대형사업을 ‘전결’로 처리한 심소장의 결재는 사실상 전격적 용단이었고 또 연구팀에 대한 전폭적 신뢰의 산물이었다. 그는 이와 함께 79억600만 원에 달하는 건조예산도 일괄 승인해 주었다. 대통령의 사업 재가는 아니었지만 연구팀은 모두 뛸 듯이 기뻐했다. 이로써 돌고래의 건조 착수가 가능해진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뿌듯했던지 돌고래를 타고 잠항·부상하는 모습을 그리며 마냥 즐거워했습니다.”(임경식 박사)

돌고래 건조사업 재가를 받아낸 연구팀은 80년 중반 돌고래 시작함(試作艦) 건조에 착수한다는 목표로 인력 보강과 함께 재편성했다. 시험평가와 개발지원담당을 신설하고 충격 및 진동 유체역학 등 보다 세부적인 전문연구담당을 세분 또는 신설했다.

연구팀은 또 돌고래 개념설계와 기본설계 결과에 따라 선각(船殼) 건조에 필요한 일부 상세설계를 실시하고 강재(鋼材) 배치도와 일반 배치도 등의 기본 설계도면을 수정·보완했다. 또 SWBS(Ship Work Breakdown Structure·함정작업 분해 구조)에 따라 도면번호를 10개 숫자로 표시토록 재분류해 규격화되도록 했다.

마침내 80년 6월16일 코리아타코마 조선소와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44억600만 원에 상세설계 및 건조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은 이날부터 83년 9월30일까지였다.

연구팀은 계약 첨부물로 일반 배치도와 56매의 설계도면, 그리고 상세설계 및 건조 사양서를 제공했다. 조선소 특수선부를 편성하고 건조와 설계, 그리고 품질관리·전산 등 지원업무를 수행할 인력계획을 수립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