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1일 기존 KTX - 1 05호기에 외부 연료 탱크와 로켓 발사관 등 외부 장착물은 물론 전방 상향 시현기(HUD), 항공 전자 시스템(ASC), 동력 패키지, 자동 러더 트림 시스템(ARTS) 등 새로 개발된 구성품을 모두 장착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된 저속통제기(XKO - 1) 05호기가 마침내 초도 비행의 날을 맞았다.

05호기의 모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지 1차 확인하는 초도 비행의 이날, 분야별 실무 연구진이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공군52시험비행전대가 위치한 비행단을 찾았다. 초도 비행의 조종사로 나설 장창열 소령과 오재일 소령도 05호기의 시스템 운용 절차를 숙지한 채 차분한 마음으로 격납고로 향했다.

장소령이 비행 전 지상에서 각 계통을 최종 점검하는 동안 연구진의 모든 시선이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연구진이 보는 눈과 실제 운용할 조종사가 보는 눈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임무 컴퓨터를 비롯한 항공 전자 시스템을 신규로 개발·장착한 우리 항공전자팀으로서는 혹시 우리 분야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초조한 마음이 없을 수 없었습니다.”(이성수 팀장)

이윽고 조종사 장소령의 엄지손가락이 하늘을 향했다. 모든 시스템이 정상이라는 신호인 동시에 ‘이륙 준비 끝’임을 알리는 것이었다. 캐노피가 닫히고 엔진 시동과 함께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하면서 저속통제기는 격납고를 빠져 나와 유도로를 거쳐 활주로에 들어섰다.

“1992년 KTX - 1 초도 비행 때보다 덜했지만 당연히 긴장됐죠. 비행 시험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쏟은 그 많은 노력이 성공을 향해 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줄지, 아니면 헛걸음·헛수고라는 허망한 쇼크를 줄지 참으로 부담스러웠습니다. 이런 기분은 연구개발 중 갖는 성공에 대한 자신감과는 별개입니다.”(백철훈 팀장)

비록 부담감이 연구진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해도 05호기는 이미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 오르고 있었다. 우리가 개발한 항공기에 대한 시험 비행을 150회 수행한 노련한 조종사 장소령은 05호기의 각종 비행 특성과 항공 전자 시스템을 치밀하게 점검해 나갔다. 통제실에서도 조종사의 육성 교신 내용과 원격 측정으로 저속통제기의 비행 상태 모니터링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70분 뒤 05호기는 비행장 상공에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제 조종사의 디브리핑(debriefing). 연구진은 시험 비행 조종사의 비행 결과와 운용 소감에 귀를 기울였다. 새로 장착된 HUD의 화면이 좀 어두운 감이 있고, 전후방 계기와 HUD에 시현된 속도가 2∼3노트 차이가 있으며, 실속 경고가 들어오자 곧 항공기가 실속에 진입하는 현상 등 몇 가지 수정돼야 할 사항을 지적했다. 이어 신규로 장착된 HUD를 통해 녹화된 영상 자료와 각종 저장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지적 또는 수정·보완 요구 내용도 비교적 수월히 해결 가능한 것이어서 전체적으로 볼 때 05호기의 상태가 양호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향후 분야별로 다양한 시험이 이어져 그 결과에 따라 보완·추가해야 할 사항이 적잖게 나오겠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운 첫 결과에 큰 짐이 어깨에서 내려진 듯한 가뿐함과 정말 우리가 제대로 해내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 그런 것이었죠.”(이성수 팀장)

분야별로 모든 경우를 고려해 설계·제작한다 해도 실제 시험을 진행하면서 검증하다 보면 연구진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경우에 부딪치거나 개발 초기에는 없던 요구 사항이 시험 조종사들에 의해 제기되게 마련이다.

ARTS의 경우 05호기 비행 도중 조종사가 이 장치를 끈 후 다시 작동할 경우 항공기 좌우 흔들림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연구팀은 사실 공중에서 ARTS를 껐다 켜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제어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이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곧바로 수정한 후 가진 비행 시험에서 조종사는 항공기가 만족스러운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언제라도 ARTS를 지원해 줄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는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고 국산화 성공이 판정됐을 때는 자부심, 그리고 한편으로는 2000년 여름에 퇴사한 그 동료에게 감사하고픈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백철훈 팀장)

항공 전자 시스템 분야의 경우 주로 전방 시현기와 다중 임무 시현기(MFD)에 새로운 몇몇 기능을 추가하고 또 몇 종류의 심벌을 변경해 달라는 요구가 제기됐다. 이 같은 요구는 모두 OFP의 변경을 초래하는 것이었으나 국내에서 개발된 만큼 연구팀은 신규 요구를 시스템에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순차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다. 이후 ASC는 통신·시현·무장 제어 등 계통별 시험을 통해 운용 성능을 확인, 성능을 인정받았다.

“해외 업체들이 HUD에 시현된 그래픽 영상을 비디오로 보여 주며 장비를 소개할 때마다 언젠가는 우리가 개발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곤 했는데 그게 10년입니다. 저속통제기의 ASC 개발은 말 그대로 ‘쾌거’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이성수 팀장)

앞서 ‘저속통제기는 디지털 항공기’라고 일컬었던 것은 바로 이 ASC에 의한 디지털 항공 전자 시스템을 독자 개발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연구진이 미래에 대비해 핵심 기술을 꾸준히 연구해 온 결과로 장차 전투기·헬기·무인기 등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므로 그 의의는 매우 높게 평가된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