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9일 오전 11시52분, 저속통제기 05호기와 04호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시험 장소인 안흥 앞바다로 향하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후면 투하 해역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안흥 시험장의 선박에 승선한 상태에서 통신 연락을 받은 연락팀의 전찬원 연구원은 말없이 하늘을 응시했다.

갑자기 벨이 울렸다.

“안흥입니다. 시험 수역으로 민간 어선 한 척이 접근하는 것이 레이다에 잡혔습니다.”

깜짝 놀란 전연구원이 “어선 통제를 마쳤는데…”하며 인근 바다를 살피는 중에 04, 05호기도 저 멀리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또다시 연락이 왔다.

“안흥입니다. 05호기가 (해상 통제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1차 루트 비행 중에 민간 어선 한 척을 발견했습니다. 추가적인 통제가 필요합니다. 빨리 조치하셔야겠습니다.”

전연구원은 마음이 급해졌다. 즉시 해상 통제 임무를 담당하고 있던 쾌속정으로 하여금 어선의 진로를 바꿔 시험 수역을 벗어나도록 유도해 나갔다. 05호기는 항공기 진행 방향에 대한 바람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연습 투하를 하는 2차 루트 비행 중이었다. 겨우 민간 선박을 안전 수역으로 이끌어 낸 것은 05호기가 투하 지점에 재진입할 즈음이었다.

이윽고 카운트다운. “투하 1분 전, 30초 전, 10초, 투하”라는 시험비행 조종사의 목소리가 통신 장비를 통해 전달되면서 로켓 발사관이 항공기에서 안전하게 분리돼 낙하하는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투하 지점과 10㎞ 거리 떨어진 안흥 통제실에서는 망원경으로 직접 볼 수 없었지만 비행 기지 통제실에서는 추적기(04호기)가 촬영한 투하 장면이 깨끗하게 전송된 덕분에 시험이 성공적이었음을 즉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뒤 또 한 번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투하물 수거에 실패했다는 내용이었다. 수거팀은 투하 예정 지점으로부터 5㎞ 떨어진 해상에서 대기하다 투하물이 해면에 떨어지면 곧바로 회수해야 하는데 투하 지점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안흥 시험장은 확실한 투하물 회수 방안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다른 방안을 추가적으로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됐다.

“망막하기 짝이 없었죠. 말이 5㎞이지 바다는 넓디넓은 데다 투하물은 조류와 함께 흐르니 이거야말로 모래벌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이수용 팀장)

연구진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준 이는 이용표 공군중령.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물감을 쓰자는 것. 조종사가 비상시 낙하산으로 항공기를 탈출, 바닷물 위에 닿을(着水) 때 물감이 즉시 퍼짐으로써 조종사가 착수한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제작된 ‘Sea Dye Marker’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 물감을 투하물에 투입, 사용하자는 그의 제안에 따라 공군의 협조를 받아 시험에 적용했다.

“투하 시험은 안전을 위해 투하 예상 지점을 중심으로 직경 2㎞ 내의 해상을 완전히 비워야 시험이 가능합니다. 시험 일정과 시간을 미리 어민들에게 통지하고, 또 항공기가 도착하기 전에 연구소가 보유한 선박을 타고 이 해역 안으로 오지 못하도록 통제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더군요.”(전찬원 연구원)

만만찮은 이유는 첫째, 시간에 있었다. 전투비행단에서는 작전을 수행하는 전투기 등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 시간이 정해져 있게 마련. 저속통제기도 임의로 이착륙할 수는 없다. 때문에 연구팀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안흥 지역의 시험 준비도 완료해야 했다.

그러나 연구소의 선박 2척이 해상 통제를 완료한 상태에서도 또 다른 민간 선박들이 투하 지점 근처로 운항해 오는 경우가 수 차례 발생, 시험 요원들의 애간장을 태우곤 했다. 이럴 때면 저속통제기는 상공에서 배회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투하 지점으로 설정된 섬에서 해녀들이 작업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비행 중인 조종사가 연락해 온 경우도 있었다. 급히 수거팀이 쾌속정을 보내 해녀들을 시험이 끝날 때까지 억류 아닌 억류를 해야 했다. 연구팀이 이 투하 시험을 착수할 때는 10여 회의 시험을 한 달이면 종료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서해안 지역의 빈번한 해무(海霧)와 투하물 회수 등의 문제로 3개월이라는 장기간이 소요됐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