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어’가 주행할 수 있는 시간이 6분이니까 이 동안에 갈 수 있는 거리 내 수면을 수색해 보자고.”

소해정과 헬기·훈련기에서 어뢰 행방에 대한 보고가 없자 어뢰를 쏜 소해정에서는 긴급 회의가 열렸다. 해수전지의 힘이 떨어져 KT-75 상어가 수면에 떠 있을 경우와 해저에 가라앉았을 경우를 다 고려해 탐색키로 했다.

헬기·훈련기가 해상을 샅샅이 훑어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체공 시간 관계로 헬기·훈련기는 돌아가고 두 척의 소해정은 해가 진 뒤에야 진해항으로 귀항했다. 출항 때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연구원 모두 우울한 한숨을 내쉬며 비탄의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 날 한국 함대(현 작전사령부)에서 시험 결과 보고와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해군은 ‘연구개발 중 시험하다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최대한 지원키로 했다. 시험을 참관한 박철희 박사가 당시 함대사령관 김종곤 중장에게 잘 설명, 이해를 도운 까닭도 있었다.

탐색 작전에는 소해함 1척과 UDT(수중폭파대) 대원들이 투입됐다. 탐색 소해 소나가 수심 25~30m의 해역을 스캔하면서 어뢰 크기 모양과 비슷한 신호를 잡으면 UDT 대원이 바다에 뛰어들어 육안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해저 바위로 판명돼 몇 번이고 실망하곤 했다.

“그 추운 날에 상어를 찾는 일이 연구팀에도 안쓰러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온 뒤 갑판에서 펄쩍펄쩍 뛸 때 바다 속과의 압력 차로 코피를 흘리면서도 일을 계속하는 UDT 대원들을 보면 정말 미안하고 또 ‘우리가 저런 투철한 군인과 함께 있구나’ 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박성희 박사)

한 번은 드럼통이 마치 KT-75처럼 소나에 잡혀 흥분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새벽에 바다로 나가고 밤늦게 들어와 소주로 서로를 위로했지만 모두가 지치고 몸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김영수 박사는 위염이 생겨 한동안 고생했는데 결국 10여 일 만에 상어를 찾는 일을 포기해야만 했다.

“정말 값비싼 경험을 한 것이죠. 이 일로 전용 시험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또 개발 목표도 다시 검토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 해군이 보여 준 이해와 협조에 감사하고 있습니다.”(김영수 박사)

연구팀은 KT-75의 실패 이후 다각적인 원인 분석이 이루어졌다. 두 번째 어뢰(KT-76)에 대한 발사 시험도 고려했으나 분실 위험성이 높았다. 다만 국내 업체의 제작 기술 능력을 확인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때 연구팀에 희소식이 들려왔다. 미 해군과 어뢰 분야에 대한 자료 교환 협정(DEA ： Data Exchange Agreement)을 맺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미 해군으로부터 MK-44 경어뢰의 도면과 교범 등 기술 자료를 지원받게 되면서 연구팀은 MK-44를 모방 개발하기로 개발 목표를 수정하고 다시금 도전 의지를 드높였다.

체계 조립은 무유도 직진 어뢰 개발을 주관한 대한전선이 계속 수행키로 했으나 관련 부품 제작 업체는 일부 바뀌게 됐다. FRP 몸체는 현대합성(현 강남조선)에서, 프로펠러·기어 박스·축계는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전동기는 현대양행(현 만도기계)에서, 주조형 후부 몸체는 서울엔지니어링에서 제작했다.

그러나 음향 센서의 국내 모방 개발은 당시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돼 미국 FMS(Foreign Military Sales) 구매를 통해 확보하기로 했다. 해상 발사 시험도 국내가 아닌 FMS 방식에 의해 미 워싱턴 주 키포트에 위치한 미 해군 수중병기센터(NUWES)의 다봅 만(Dabob Bay) 시험장에서 1979년 봄에 실시하기로 협의했다. 이 때문에 이때까지 새로운 ‘상어’ 시제를 제작해야 했다.

이즈음 연구팀은 새로운 의욕으로 무장한 젊은 연구진을 맞아 더욱 활력이 넘쳤다. 77년 봄에 박의동·김용일·서인준·김영환 등, 78년 봄에 이재명·백종성·차상원 등 새로 입소한 병역 특례 연구원과 해군에서 제대한 김의형 연구원이 가세한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상어’ 시제 제작에 필요한 부품 확보에서부터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50년대에 개발된 MK-44는 진공관과 릴레이·스테핑 스위치 등이 주요 전자 장치를 이루는데 이들 부품 확보가 용이하지 않았고 이것이 가장 큰 장애였다.

대한전선은 전자 부품의 독자 수급이 어렵다고 판단,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관급을 받는 조건으로 내걸고 시제 계약을 체결할 정도였다.

카탈로그 등을 뒤지며 텔렉스에 의존해 자료를 입수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 연구팀은 물론 ADD 차원에서 연구소 미국 주재원과 업체의 상사 요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오퍼상까지 총동원해 부품을 확보했다. 더욱이 어뢰를 조립하는 과정에서 치수 오차와 수(手) 가공에 의한 오작동 등으로 상당히 많은 부분에 수정을 가해야 했다. 출근과 동시에 줄·사포 등을 들고 조립이 가능하도록 갈아내기도 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