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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국산무기개발 비화 - 어뢰 백상어·청상어 (14)

1983년 6월15일, 시험준비팀은 발사 시험일을 하루 앞두고 저녁 늦게 K-744 시제 어뢰를 최종적으로 조립 완료한 후 수밀(水密) 시험을 준비했다.

어뢰의 수중 발사 시험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구 조건은 어뢰가 수중으로 발사된 후 수밀성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뢰를 최종 조립하게 되면 어뢰 내부의 공기를 빼내어 진공 상태로 만든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어뢰 내부의 진공도(度) 변화가 기준 범위에 들어오는지를 점검하는 기밀성 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기밀성 시험 결과 미세한 압력 저하 현상이 발견됐어요. 물론 허용되는 기준 범위 내에 들어갈 만큼 아주 미세한 현상이었지요. 그 상태로도 얼마든지 발사 시험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누수 상황을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팀원 모두가 지쳐 있었다는 거지요.”(송준태 박사·책임연구원)

어뢰를 다시 분해·점검하는 데는 몇 시간이 걸린다. 이 일을 굳이 다시 해 봐야 하는지에 대해 누군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침묵을 지켰다. 다만 사업 책임자인 송준태 박사가 짧은 시간에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다. 어뢰를 다시 분해·점검하기로.

비명이 나올 만도 한데 이상(?)하게도 모두가 군말 없이 작업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번 발사 시험을 꼭 성공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몇 시간에 걸쳐 발사할 어뢰를 분해하는 동안 눈꺼풀의 무거움을 새삼 깨달았다. 잠을 쫓으면서 부품들을 세세히 점검했다. 그 결과 아주 작은 고무 O-링 하나가 조립될 때 약간의 손상을 입은 것을 발견했다. 고무 O-링을 교체하고 조심스럽게 다시 조립했다. 새벽녘에야 실시된 최종 수밀 시험에서는 당연한 결과지만 압력 저하가 전혀 없었다.

이튿날인 6월16일, K-744 시제 어뢰의 첫 수중 발사 시험은 성공적으로 수행됐다. 이후 가진 발사 시험은 모두 10회. 초기 3회에 걸쳐 표적 탐지 방향 오류와 표적 탐지 등의 실패도 있었고 어뢰의 행방을 찾지 못해 어뢰 회수용 수중 로봇(ROV)을 투입, 회수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7회에 걸쳐 성공적으로 성능을 입증했다. 김응범·이재명·김정식 등 시험준비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뛰어난 팀워크에 힘입은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83년 8월 말 이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귀국 길에 올랐다.

연구팀의 시험은 이제 국내 해역에서 이뤄졌다. 미 해군으로부터 대여해 온 MK-17 모의 표적기를 표적으로 삼아 해군 초계함에서 어뢰를 발사하는 운용 시험을 실시하는 가운데 85년 4월부터 장기 교육 파견을 통해 박사 학위 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박성희(백상어·청상어 사업책임자 역임, 현 2체계개발본부장) 박사가 수상함 연구실장으로 보임된 송준태 박사에 이어 어뢰연구실을 이끌게 됐다.

K-744 시제 어뢰에 대한 운용 시험은 86년 3월 성공적으로 종료돼 86년 7월5일 합참으로부터 무기 체계로 채택됐다. 하지만 이것은 탄두와 신관을 제외한 것이었다. 탄두·신관의 국산화 개발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탄두·신관의 마지막 시험은 완성 탄두에 대한 수중 기폭 시험으로 장식하게 된다. 원래는 활성 탄두가 장착된 K-744를 실제로 발사해 수중 목표물과 충돌에 의한 충격으로 신관이 작동, 폭발하도록 해야 했지만 그 당시 국내 상황으로는 엄두도 못낼 대규모 시험이었다.

때문에 시험치구를 제작, 실제 상황과 유사한 조건에서 시험을 수행해야 했다. 즉, 탄두를 일정 속도 이상 강제적으로 낙하시켜 정지된 판에 충돌할 때 신관이 동작, 폭발하도록 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88년 12월29일, 망년회는 고사하고 연말의 즐거운 기분을 느낄 틈도 없이 연구팀은 차가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남해안 시험 해역으로 나갔다. 준비 완료. 카운트다운. 하지만 눈과 귀를 집중했지만 틀림없이 들려야 할 폭발음도, 하늘로 치솟아야 할 물기둥도 보이지 않았다. 원격 조종 장치를 통해 시험 장치와 신관의 기능을 점검해 봤다. 정상. 탄두는 이미 충돌한 상태였는데 신관 내 기폭관은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였다.

연구팀은 ‘실패’에 대한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갑자기 악화된 한겨울의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 위험을 무릅쓰고 시험치구를 인양했다. 허탈한 기운이 한순간에 밀려들었다. 시험치구가 수중에 버려진 그물에 얹혀 있었다. 이 때문에 탄두가 충돌판에 부딪치기까지 충분한 가속도를 얻지 못해 실패하고 만 것이다.

“시험 장소를 선택할 때 대상 해역의 해양 환경을 먼저 철저히 조사해 어망이나 어로 작업이 없는 곳을 찾아야 했는데 단순히 해도(海圖), 그것도 오래 된 해도만을 참조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해상 시험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해상 시험장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해야 했습니다.”(곽한우 책임연구원)

탄두·신관에 대한 시험은 89년 2월 속개돼 순조롭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으며 K-744는 전투 사용 가(可) 판정과 함께 이때부터 양산 과정에 들어가 해군에 실전 배치됐다.

K-744 경어뢰는 지난해 개발 완료한 신형 경어뢰 청상어로 교체될 예정이지만 그 의의는 자못 크다. 첫째, 90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해군의 주력 대잠 무기로 실전에 배치 운용됨으로써 한국 해군 대잠 전력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뿐만 아니라 국내 어뢰 관련 기술 능력을 선진국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계기를 이뤘으며, 특히 이후 백상어·청상어 개발을 주도해 나갈 연구개발 인력을 전문 분야별로 다수 양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 해군 시험장에서의 수중 발사 시험과 국내 해역에서의 해상 운용 시험을 통해 겪은 갖가지 기술적 경험은 90년부터 국내 해상 시험장을 건설할 때 아주 좋은 밑거름이 됐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

2005-08-01 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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