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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국산무기개발 비화 - 어뢰 백상어·청상어 (15)

1980년대 국내 개발 무기 체계 중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철저한 보안이 유지됐던 최고 비밀 중 하나는 85년에 취역한 소형 잠수함 ‘돌고래’였다. 해군은 이 돌고래에 탑재할 중어뢰로 미국의 MK-37을 확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미국은 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 해군이 작전적으로 중어뢰를 필요로 할 까닭이 없다며 판매를 번번이 거절했다.

이에 따라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해군은 장차 중어뢰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를 위해 어뢰 연구팀은 중어뢰에 대한 사전 연구와 함께 향후 개발 가능성을 검토하고 대잠수함 작전용 이동 표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목적으로 미국과 협의, 86년에 MK-37 중어뢰를 3발 확보했다.

그런데 어뢰를 잠수함에서 발사하기 위해서는 발사 장치와 발사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점검 장비와 치구 등도 함께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야 했지만 ‘연구용’이라는 명분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다. 어뢰 연구팀에 돌고래에서의 어뢰 발사 시험을 준비, 88년에 실시하도록 임무가 추가됐다.

K-744 한국형 경어뢰의 개발에 전념하던 어뢰 연구팀은 이 새로운 임무에 매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중어뢰 3발을 미국 현지에서 인수, 검사하도록 돼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어뢰 연구팀의 이재명·김정식 연구원 등은 인수 검사를 위해 85년 11월부터 약 한 달간 미국 키포트의 미 해군 수중병기센터에 가게 됐다.

“인수 검사는 어디까지나 외관상 목적일 뿐이고 어뢰 연구팀으로서는 이 기회에 MK-37 어뢰 정비를 위한 교육을 받고자 했던 겁니다. 나아가 인수 검사 때에 필요한 장비·치구 목록과 형상 스케치를 하고 작동법도 알아내고자 했는데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이재명 박사·청상어 개발 책임자)

이재명 박사 등이 귀국하자 돌고래 발사 시험을 위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돌고래 연구팀은 돌고래의 발사관 부분과 MK-37 중어뢰의 에너지 변환기(transducer)가 장착되는 노즈(nose)부의 기구 부분 제작을 맡았고, 어뢰 연구팀은 MK-37용 연습탄 두부(頭部)의 전기적인 부분과 어뢰 정비를 위한 치구와 기구물의 설계·제작을 맡았다.

“제한된 예산과 단기간이라는 제약이 있었는데 경기도 용인에 태산정밀과 마산의 소형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제작에 나선 덕분에 몇 차례 보완·수정을 거쳐 성공적으로 장비 제작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박영일 박사·책임연구원)

특히 다행스러운 점은 88년 9월 어뢰실험동이 준공됐다는 점이다. 경어뢰는 지름이 32.4cm 정도라 사람이 직접 움직일 수 있지만 MK-37 중어뢰는 지름 48.3cm에 무게도 엄청나 크레인 없이는 분해와 조립이 어려웠다.

한국형 경어뢰 K-744 사업을 마치면 ‘중어뢰를 독자 개발하겠다’는 의욕을 갖고 있던 어뢰연구실장 박성희(현 2체계개발본부장) 박사는 당시 박덕호 연구소장이 진해를 방문, 중어뢰 발사 시험 준비 상황을 점검할 때 실험실이 없어 겪는 애로를 털어놓았다.

박소장은 이 부분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길이 7m에 가까운 중어뢰를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어뢰실험동 건설을 적극 지원해 줬고 이것은 국내 어뢰 개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돌고래에서 MK-37 중어뢰를 발사하기 앞서 수개월에 걸쳐 육상 시험이 진행됐다. MK-37 어뢰 정비 교범과 장비 매뉴얼을 토대로 반복적으로 확인하며 이를 통해 어뢰를 최종 조립한 후 예비 장전 시험을 위해 해군 부두로 나갔다. 발사일 하루 전날이었다.

비록 돌고래가 취역한 상태였지만 중어뢰를 장전할 치구는 준비돼 있지 않았다. 때문에 어뢰를 물 위에 띄우고 수중에서 돌고래의 어뢰 발사관으로 밀어 넣는 방법으로 장전키로 했다. 크레인이 어뢰를 서서히 물 위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어뢰를 감고 있던 밴드를 풀자마자 반듯하게 누워야 할 어뢰가 한쪽으로 기울더니 앞부분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게 아닌가.

부랴부랴 다시 실험실로 가져와 분석해 보니 어뢰에 장착된 추진 전지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MK-37에 장착 가능한 추진 전지는 두 종류로 서로 그 무게가 다르다. 그때 어뢰 연구팀이 가지고 있던 자료에 명시된 추진 전지가 아닌 다른 추진 전지가 들어온 것이 주 원인이었는데, 거기에다 3톤까지 측정할 수 있는 저울이 고장 나 최종 조립한 어뢰 무게를 확인하지 못하고 예비 시험에 나간 것이었다.

“어뢰의 노즈 부분에 납판을 급조해 추가로 장착, 무게를 겨우 맞춘 뒤 발사 시험 준비를 마쳤습니다. 시험 준비 마지막 과정에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간과한 사례였습니다.”(한광섭 책임연구원)

88년 10월27일, 마침내 잠항한 돌고래 함장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해군 최초로 수행하는 잠수함에서의 어뢰 발사 시험. ADD 관계자는 물론 해군 관계자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함장의 발사 명령과 함께 어뢰는 자주(swim out) 방식으로 발사관을 박차고 이탈했다.

돌고래의 소나는 중어뢰의 추진음을 계속해서 청음하고 있었다. 얼마 후 계획된 시간 동안의 중어뢰 항주가 끝나고 중어뢰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로써 한국 최초로 잠수함에서의 중어뢰 발사 시험은 성공으로 종결됐다.

“MK-37 중어뢰의 돌고래 발사 시험은 도입한 어뢰의 수중 발사 시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백상어의 국내 개발 추진에 앞서 연구원들의 중어뢰에 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을 넓히고 중어뢰의 국내 독자 개발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관련된 사람들에게 입증하는 데 아주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박성희 박사)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

2005-08-08 1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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