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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국산무기개발 비화 - 어뢰 백상어·청상어 (17)

중어뢰 개발을 위해 뜻을 모으던 1985년, 국방과학연구소(ADD) 어뢰연구팀에는 미국 MK - 37 중어뢰의 연구용 도입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계기가 주어진다. 그것은 해군이 82년부터 진행해 온 잠수함 해외 도입 사업이 수면으로 부상,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 잠수함에서 운용할 기본 병기로 중어뢰 도입도 활발히 논의돼 주요 국가에서 운용 중인 중어뢰에 대해 성능을 비롯한 기술적 검토를 수행하라는 국방부의 지시가 연구팀에 떨어졌다.

영국 마르코니사의 타이거피시(Tigerf-ish), 독일 AEG사의 SUT(Surface & Unde -rwater Target), 이탈리아 화이트헤드사의 A184, 프랑스 DCN사의 F17P 등 4종의 어뢰가 검토 대상이었다.〈제원 표 참조〉

영국 - 아르헨티나 간의 포클랜드 해전에서 중어뢰의 위력이 입증된 직후여서 안팎으로 관심이 집중되던 때였고 어뢰를 생산하는 해외 업체들은 자사의 중어뢰를 한국에 판매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자사 제품의 성능과 특성을 앞다퉈 소개하면서 경쟁사 어뢰의 단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중어뢰 독자 개발을 추진하려는 어뢰연구팀에는 군사 선진국들의 첨단 중어뢰 성능을 비교·분석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어뢰의 운용 개념과 향후 개발 중에 겪을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 등도 알게 됐는데 특히 종합 군수 지원(ILS)에 관한 것은 아주 소중한 기초 자료가 됐습니다.”(이재명 박사)

해군이 확보할 잠수함으로 독일의 209급이 결정되면서 탑재할 중어뢰도 독일의 SUT로 결정됐다. 해군 조함단은 88년 4월 독일 현지에서 SUT의 시험 발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참관팀을 국방부 1명, 해군 2명으로 구성했다. 하지만 당시 해군참모총장 김종호(金悰鎬·해사10기) 대장은 해군 1명을 빼고 ADD 어뢰연구팀 1명을 포함시킬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이재명 연구원이 참관팀에 갑자기 참여하게 됐다.

독일은 함부르크에 위치한 AEG사에서 발사 준비를 한 후 그곳에서 약 150㎞ 북쪽에 위치한 에켄포르데의 어뢰 시험장에서 SUT 어뢰를 발사키로 했다. 이 시험장의 수심은 20~30m 정도였고 해변에 있는 발사장 건물에서 발사관을 통해 발사하고 임무 종료 후 표적함에서 어뢰를 회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특히 어뢰가 표적함 근처로 접근할 때 이를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해 어뢰의 몸체(hull)에 램프를 부착, 야간에 발사했다. 당초 2발을 발사키로 했으나 시험팀이 1발을 더 요구해 모두 3발을 쏘았다. 이재명 연구원은 발사·점검 절차와 시험장 운용 등을 빠짐없이 눈여겨보면서 값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해가 바뀌어 87년 1월이 되자 해군은 MK - 37급 중어뢰를 국내에서 개발 가능한지 여부를 검토해 달라고 ADD에 요청해 왔다. 이에 연구팀은 동급의 타 국가 어뢰에 대한 기술 분석 결과와 MK - 37에 대한 각종 테스트를 통해 얻은 기술적 경험, 국내 산업체 기술, 학계 연구 수준, 86년 국방부 승인 이후 진행해 온 기초 연구 등을 종합해 개발 가능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또 88년부터 어뢰가 수면 근처에서 주행 중 파도가 심도 제어 능력에 끼치는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자유 표면에서의 유도 제어 기법 연구’라는 기초 연구를 국내 유수 대학의 전문 교수로 구성된 연구진을 통해 수행한 결과가 어뢰팀에 자신감을 더해 줬다.

연구개발에 있어 일종의 아웃소싱이 되는 이 같은 외부 연구진의 기술 자문과 위탁 연구, 특히 유도 제어를 전공한 서울대 이장규 교수와 수중 신호 처리를 전공한 성굉모 교수를 주축으로 한 민간 전문가 그룹은 후에 중어뢰 개발이 종료될 때까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이즈음 중어뢰를 국내 개발을 통해 확보하려는 횡보는 ADD보다 해군이 더 급하게 내딛고 있었다. 해군은 연구팀에 국내 개발 가능성 검토 요구를 한 데 이어 89년 1월 무기 체계(어뢰) 소요를 국방부에 정식으로 제출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어요. 이제 겨우 한국형 경어뢰 K-744의 개발을 마치고 한숨 돌리며 중어뢰 기초 연구를 수행하는 중이었는데 개발 사업을 본격화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쨌든 이때부터 무기 체계 획득 관리 규정에 따라 해군과 사업 진행을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무척 바쁠 수밖에 없었습니다.”(박성희 박사)

우선 연구팀은 ADD와 해군 간의 연구개발 동의 절차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해군은 ADD에 한 가지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단거리 함대함 미사일 ‘해룡’ 때문이었다. ADD는 최초의 지대지 미사일 ‘백곰’에 이어 80년대 초 해룡을 개발했으나 시험 평가 결과 일부 작전 요구 성능(ROC)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보통의 날씨 환경에서는 좋은 성능을 발휘했지만 해상에 안개가 끼면 유효 사거리가 떨어지는 현상이 빚어지곤 했던 것이다. 해룡은 해군 무기 체계로는 채택됐지만 양산(量産)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중어뢰 개발 여부를 사실상 결정짓는 해군 무기 체계 실무회의(89년 8월9일)는 발 빨랐던 소요 제기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분위기였다. 실무회의 위원장인 해군본부 작전참모부장 간용태(簡容泰·해사13기·예비역 중장) 소장을 비롯해 작전처장 이지두(李址斗·해사19기·예비역 중장) 준장, 전략처장 서영길(徐榮吉·해사22기·예비역 중장) 대령, 그리고 병기처장·조함기술처장 등 18명의 관계 부서 핵심 처장들이 참석한 이 회의를 어뢰연구실장 박성희 박사는 어둡게 바라보고 있었다.

뜻밖의 의견은 간용태 제독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실패해도 좋으니 우리 손으로 중어뢰를 개발해 봅시다.” 박성희 박사는 귀가 번쩍 뜨였다. 수백억 원의 연구개발비가 투입될 대형 사업이 실패해도 좋다는 그 말에는 그 자신 역시 이 사업에 책임지겠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것은 결코 쉽게 내놓을 수 있는 성질의 말이 아니었다.

회의는 긍정적으로 진행돼 중어뢰 연구개발안이 통과되고 이어 9월에는 합참에서 연구개발 동의서(LOA:Letter of Agreement)가 확정됐다. 하지만 어뢰연구팀이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업 절차상 겪어야 할 어려움은 지금부터였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

2005-08-22 19: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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