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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국산무기개발 비화 - 어뢰 백상어·청상어 (19)

“뭐, MK-37을 사다 탑재시키란다고?”

전력증강위원회(이하 전증위) 회의를 앞두고 국방부 관련 국·실의 검토 의견과 동의 절차를 밟아 나가던 어뢰연구실장 박성희 박사는 이재명 연구원으로부터 국방부에서 전달해 온 청천벽력 같은 비보(悲報)를 전해 듣고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위는 이렇다.

몇 달 동안 애써 작성된 중어뢰 개발 사업 계획서는 1989년 11월 초 국방부에 접수됐다. 국내 최초로 개발코자 하는 중어뢰의 중요성을 감안해 국방부 방산국과 합참 등 관련 부서의 사업성 검토는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돼 11월21일 제89-15차 획득실무위원회를 통과, 사업 계획 승인을 받았다.

다음은 연구개발 예산 승인이었다. 예산을 검토·분석하는 절차는 국방부 사업조정관실의 주관으로 실시된다. 세부 항목별 예산의 적절성을 사업조정관실이 검토하고 방산국과 군수국·시설국, 합참의 무기체계국 등 9개 관련 부서의 검토와 동의를 받아야 전증위에 상정이 가능해진다.

그 비보가 전해진 것은 각 관련 부서의 검토가 완료돼 전증위에 안건으로 상정되기 바로 직전이었다. 해군의 고위급 인사가 중어뢰의 국내 개발을 추진하지 말고 미국에서 MK- 37을 사다 돌고래에 탑재토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난감했다. 돌이켜 보면 MK- 37은 미국이 ‘한국에는 중어뢰 소요가 없으므로 판매 불가’라는 문서를 오래 전에 보낸 상태. 또 수년에 걸쳐 MK- 37급 중어뢰 개발 가능성 검토를 마치고 연구개발 동의 등의 절차를 모두 거치지 않았는가.

박실장은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제2연구(해상·수중 무기 체계)개발본부장인 김영수 박사에게 이 사실을 곧바로 보고했다. 국방부에서는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이미 연구개발로 획득 방법이 확정된 상태이므로 해군 고위층의 의견이라 해도 전증위를 개최해야 된다는 쪽과 그래도 해군 고위층의 지시인데 진위는 파악하자는 의견이었다.

전증위 준비를 위해 국방부에 있던 박실장과 이연구원은 허탈한 심정으로 조그마한 맥주집에 마주 앉았다. 앞으로 예상되는 사태를 논의하며 낙심하고 있었다. 김박사는 급거 상경, 국방 연구개발비 중 해군이 차지하는 부분이 타군에 비해 매우 낮고 MK- 37은 성능 또한 낮기 때문에 중어뢰를 국내 개발해야 한다고 고위층을 설득했다.

이튿날 해군은 입장을 바꿔 국내 개발 쪽으로 의견을 다시 제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방부에서 해군의 해명 없이는 전증위 상정을 보류하겠다고 입장을 밝혀 상황은 또 한 번 꼬였다. 이 바람에 해군본부의 모 인사가 국방부 전증위 위원들을 일일이 방문, 해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11월29일 오전 10시 국방부에서 개최된 전증위는 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중어뢰의 연구개발을 승인했다. 이후 12월23일 대통령 재가를 받았다. 이로써 군사 선진국의 독점물인 어뢰의 국내 개발 사업에 착수하는 절차를 다 밟아 중어뢰 개발은 그야말로 힘찬 첫발을 내딛게 됐다. 이는 1860년대 화이트헤드가 현대적 어뢰를 탄생시킨 이후 130여 년 만이었다.

어뢰연구팀은 중어뢰 시제품 제작을 위한 업체 선정을 진행시켜 나갔다. 어뢰 전체 체계를 조립하고 개발 성공 후 양산(量産·mass production)도 맡을 주 시제업체와 각 구성부별 개발 파트너를 찾기 위해 먼저 중어뢰 개발에 관한 과제 설명회를 열었다.

1989년 4월10일 열린 설명회에는 한국형 경어뢰 K-744 개발에 참여한 금성정밀을 비롯해 기술력을 자랑하는 많은 업체가 자리를 가득 메웠다.

특히 사업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듯 금성전기는 최호현 연구소장, 권유근 이사, 성백락 부장 등 핵심 간부가 대거 참석했고 금성정밀에서는 유호석 상무와 조영창 부장이, 삼성항공에서는 신순사 부장과 변승완 실장 등이 참석해 사업 내용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이들 업체는 주 시제업체로 개발에 참여하기를 희망했다.

정확하고 공정한 업체 선정이 중요했다. ADD는 업체의 사업 관리 능력, 유사 기술력, 시설과 장비 확보 계획, 투자 계획과 발전 방안 등 여러 항목에 걸쳐 평가표를 작성·선정키로 하고 각 분야별 검토위원도 위촉했다. 1989년 12월 제2연구개발본부장인 김박사의 품의를 받아 주 업체는 최광재 부장을, 주요 구성부의 평가는 박성희 박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평가위원회를 구성해 평가에 들어갔다.

이때 삼성항공이 과도한 개발비 투자가 예상된다며 포기 의사를 밝힌 반면 금성전기는 금성정밀을 포함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주 시제업체로 추천됐다.

1990년 4월 국방부는 이들 업체에 대한 최종 심의를 벌였다. 그 결과 주 시제업체는 금성전기, 음향탐지부는 금성정밀, 수중항법장치는 한국리튼, 신관은 협진정밀, 주장약은 한국화약이 시제업체로 최종 선정됐으며 이후 전동기의 협력업체로 국내 직류 전동기 전문업체인 성일산업이 추가됐다.

그러나 1993년부터 94년 사이 성일산업은 모 업체인 봉명산업의 부도로, 한국리튼은 업체 폐쇄로 인해 협력업체·시제업체가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편 이즈음 연구팀은 중어뢰의 무기 체계 이름을 결정했다. 이미 국내 개발 어뢰의 대명사 격이 된 ‘상어’를 계승하면서 강력한 파워를 상징하기 위해 바다에서 포악하기로 이름난 ‘백상어’(White Shark)라고 명명한 것이다. 또 국내 개발 무기를 뜻하는 K와 해군 무기를 뜻하는 7에 근거해 ‘K- 731’이라는 형식 명칭을 정하고 시제 개발품에는 ‘X’(eXperimental)를 추가해 ‘XK-731’로 표기하기로 결정했다.

연구팀도 크게 보강됐다. 백상어 사업 착수와 동시에 신규로 36명의 인력이 충원된 것이다. 김응범·전완수·이재명·한기택·박영일·김삼수·임준석 연구원 등 기존 멤버들은 백상어의 설계 업무를 진행하는 가운데 신참 연구원들을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역량 있는 ‘상어 조련사’로 이끌기 위해 별도의 교육을 실시하는 등 이중 부담을 안고 많은 기간 고생한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

2005-09-05 19: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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