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력이 미약한 가운데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 급박했던 과거, 군은 일종의 `성역'으로 우선 배려의 대상이 돼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이후 민주화 추세는 이에 대한 변화의 `힘'으로 작용함으로써 결국 군의 `탈성역화'라는 바람직한 방향의 변화를 이루어 냈다.

그러나 탈성역화는 그것을 이루어 낸 바로 그 힘의 관성에 의해 정상적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진행됐고, 그 결과 군과 국방은 오히려 역성역화의 대상이 됐다.

이러한 상황은 국방예산의 책정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군은 80년대 후반 이후 국가적 예산배분에서 항상 일차적 감축과 억제의 표적이 돼 왔다. 즉 군사 -안보적 고려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경제개발비·교육비·사회복지 지출도 국방예산의 삭감을 통해 충당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온 것이다.


군사·안보적 고려 뒷전

국방예산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억제 편성됨으로써 나타난 일차적 결과는 전력증강이 한계에 직면하게 됐다는 점이다.

국방예산의 억제는 무엇보다도 전력증강을 위한 투자비를 크게 위축시켜 왔다. 90년대 후반 이후 전력투자비 증가율은 연평균 2.4%로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실질규모는 거의 정체돼 왔고 심지어 일부 연도는 감소됐다.

그 결과 전체 국방비 중 전력투자비가 차지하는 몫도 80년대 말까지는 40%에 육박했으나 그 이후 급속히 감소, 90년대 후반부에는 약 30% 수준으로 유지되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실질적으로 25% 수준으로 하락한 상태다.

전력투자비의 이러한 제한으로 우선 30~40년, 또는 그 이상 된 장비들을 아직도 교체·도태시킬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전차의 경우 30~40년 전의 장비가 전체의 반이나 차지하고 있다.

수십 년 된 구형 장비, 무기들은 전차뿐만 아니라 차량·야포·미사일·헬기와 항공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으며, 이들은 아직도 전후방 곳곳에서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하면서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술기 경우도 20~30년 이상에 이르는 장비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전력증강 투자비가 장기간 억제됨으로써 당초 계획된 핵심적 전력증강 사업들은 축소되거나 수년 뒤로 미뤄지는 현상이 일상화돼 왔다.

그 결과 신규사업에 투입되는 자금은 총 전력투자비의 3.5%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F-15K 전투기 사업은 당초 60대 계획에서 40대로 축소되면서 착수 및 종결시점도 2~3년 지연됐고, 공중급유기는 2002년 5대 착수 계획이 2008년 4대 계획으로 대폭 지연, 축소됐다. 중형 잠수함 사업의 경우도 6척 계획이 3척으로, 착수 시점도 3년이 지연됐다.


계획사업 축소·지연 빈발

무기체계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는 상황 속에서 이렇게 사업의 축소·지연이 다반사로 이루어짐으로써 신형장비가 전력화되기 이전에 계획된 무기체계는 진부해지는 현상이 빈발할 뿐만 아니라, 생산단가 상승으로 총사업비가 크게 증가하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전력투자비의 지속적 억제는 또 대북 비대칭적 전력의 열세를 조기에 극복할 수 없게 하며 주변국과의 전력 격차를 시간이 흐를수록 확대시키고 있다.

북한의 전력은 대체로 노후했으나 물량면에서는 여전히 대남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화생무기·장사정포·미사일·특수부대 등 대남 절대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비대칭적 전력과 함께 전투 종심이 짧은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한편 중국·일본은 압도적인 경제력과 기술력으로 원양 작전 능력 등 장거리 투사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한편 정보위성 등 최첨단 정보전력도 급속히 증강하고 있다.

국방부문에 투입된 자금 규모를 최근 10년간만 비교해 보더라도 중국은 우리보다 약 2500억 달러, 일본은 3000억 달러를 더 투입했다. 따라서 현 추세의 국방부담률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격차는 더욱 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 틀림없다.


용어해설-국방비와 방위비

내년도 국방예산이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방비(國防費)와 방위비(防衛費)에 대한 개념의 차이를 알아본다.

먼저 국방비는 국가 예산에 계상된 육·해·공군의 경비로 넓은 뜻으로는 국방상의 목적으로 지출되는 모든 경비를 말한다.

국방비는 군비비(軍備費)·전비(戰費)·전후처리비(戰後處理費) 등으로 구분되며, 군인연금, 군사공채 원리금 상환, 군사도로·항만·철도 건설비, 군사과학 기술연구비, 방위산업에 대한 보조비, 대외 군사원조비를 포함한다.

이에 비해 방위비는 국가 예산에서 국토방위를 위해 지출하는 모든 경비로 한 국가가 독립과 생존권을 수호하고 나아가 국익을 보전 또는 증진하기 위해 사용하는 적정수준의 국방재원을 뜻한다.

방위비의 규모는 국방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군사력 건설 소요와 경제성장, 국민복지 향상 등 경제·사회 각 부문의 요구와 균형을 유지한 가운데 결정되며 국방부 소관의 국방비, 병무청 소관의 병무행정비, 경찰청 소관의 전투경찰 및 해양경찰비를 포함한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6. 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