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육군박물관은 경기도 연천군 일대의 국방유적을 조사했다. 당시 조사한 유적 중에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대전리(大田里)산성이다. 대전리산성은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와 장탄리에 걸쳐 있는 성재산 연봉(136m)에 위치하고 있다. 이 주위로 경원선 철도와 의정부∼철원을 잇는 37번 국도가 통과하는 등 교통의 요지다. 지형적으로는 한탄강 유역의 단애와 신천(莘川)의 협곡으로 인한 천연적인 방어망 구실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경기 북부 및 수도권 방위에 있어 전략적으로 중시되는 지역이다.

675년에 벌어진 매소성(買肖城·매초성) 전투는 한반도의 운명을 걸고 신라와 당나라가 충돌한 최대의 격전이다. 이 전투를 통해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됐다.

역사 기록에 남은 이 매소성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를 두고 학계에서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 왔다. 경기도 양주시 주내면 고읍리(古邑里)라는 설과 주내면 어둔리의 대모산성(大母山城)이 매소성이라는 설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다. 그러다가 1984년부터 실시된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대전리산성이 바로 매소성 터임을 최초로 추정했다. 95년에는 육군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대전리산성이 매소성으로 다시 한 번 추정되기에 이르렀다.

대전리산성은 동쪽과 서북쪽에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따라 축조한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으로 성의 둘레는 700m 정도다. 북쪽과 서쪽의 일부는 한탄강이 감싸 흐르고 있으며 직접 한탄강과 접한 지역은 절벽의 단애를 이루고 있다. 성벽 밖은 경사가 매우 심해 붕괴된 지역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서쪽과 북쪽의 일부 면은 성벽의 속돌 모습이 완연히 남아 있으며 남동쪽 면은 성돌의 일부만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이 산성의 군사적 기능은 일차적으로는 연천 방면에서 한탄강을 도하해 오는 적을 방어하는 데 있었다. 특히 산성 밑에 있는 장군나루와 한여울을 막고자 한 것을 알 수 있다. 2차적으로는 한강과 임진강 중간지역을 확보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교두보로서의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칠중성(七重城)에 대한 후방지원의 차단 내지 측면공격을 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라고 볼 수 있다.

성내에는 백제 토기편을 비롯해 신라·고려·조선시대의 각종 토기편과 기와편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여러 시대에 걸쳐 이 성이 계속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해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 고구려를 정복해 외형적으로 삼국통일을 성취했지만 내면적으로는 불완전한 통일이 됐다. 당군이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신라는 당군과 7년간에 걸친 처절한 투쟁을 전개했다.

당군은 675년 2월 임진강의 호로하(瓠蘆河) 지역을 도하, 신라의 칠중성을 공격했으나 점령에 실패했다. 임진강 이남의 교두보 확보에 실패한 당군은 675년 9월 임진강의 상류지역으로 이동해 주력을 전곡 일대에 주둔시키고 이어 한탄강의 요충지인 신라의 매소성을 공격, 점령함으로써 새로운 교두보를 확보하게 됐다. 이에 위기를 느낀 신라군은 전열을 재정비, 기습공격함으로써 매소성을 탈환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매소성을 빼앗긴 당군은 즉각적인 대규모 반격작전을 감행했다. 이에 맞선 신라군은 사력을 다해 당군을 물리쳤다. 당시 매소성 일대의 전투에 동원된 당군은 기록상으로 20만 명(실제로는 4만 명으로 추산)에 이르고 신라군은 9군으로 최대 3만 명으로 추정된다.

보병 위주의 신라군이 기병 위주의 당군을 상대해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평지전(平地戰)에서는 장창(長槍)부대 전술을 사용했고 산성전(山城戰)에서는 매소성과 같은 천연적인 장벽과 후방기지의 지원을 활용하는 전술에 의한 것이었다.

이 전투에서 신라군은 당군이 버리고 간 전마(戰馬) 3만380필과 이에 상응하는 각종 무기를 노획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에서 패한 당은 676년 2월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의 요양(遼陽)으로 옮기고 말았다. 매소성 전투의 승리로 신라는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땅을 차지해 통일신라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매소성 전투의 역사적 의의는 대단히 크다고 하겠다.

대전리산성은 나당전쟁의 최대 격전장이었던 매소성으로 추정되고 있는 주요한 관방유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관리상태는 부실한 편이다.

앞으로 대전리산성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거쳐 산성의 축조 시기와 방법·규모 등의 규명을 통한 매소성지의 확인작업과 아울러 보존 및 보호 조치를 기대해 본다.

< 강성문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교수·前 육군박물관장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2.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