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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국산무기개발 비화 - 어뢰 백상어·청상어 (52)

‘이제 두 번 다시 기회는 없다. 반드시 명예를 회복한다’.

2004년 5월 14일, 백상어 연구팀은 비장한 각오로 광개토대왕함에 올라 진해항을 출발했다. 백상어가 잠수함 실사격에서 불명중한 이후 근 8개월 동안 근접자기센서 등의 소프트웨어를 보완, 검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제 마지막 2발의 전투탄 실사격. 국방과학연구소(ADD) 해상·수중무기체계개발본부의 모든 것이 이날 실사격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백상어를 발사할 나대용함은 전날 밤 이미 기지를 출발했다. 평택함도 표적으로 쓰일 폐예인정(YTL)과 폐유류 바지를 밤새 예인해 시험 해역에 도착했다. 초계함(PCC) 4척과 고속정 7척 역시 하루 전부터 시험 해역으로 어선·상선이 들어오는 것을 통제해 왔다. 해상초계기 P-3C 2대와 헬기 2대도 투입됐다.

현장 지휘관인 우상준 준장과 잠수함 전대장 김동균 대령, 그리고 사업책임자인 이재명 박사를 비롯한 연구팀과 넥스원퓨처(구 LG이노텍)의 황완희 상무(예비역 해군준장) 등이 승함한 광개토대왕표적함이 해역에 합류할 즈음 ADD 최상문·도경철 연구원 등이 아침 일찍부터 소음을 만들어 줄 조음기와 무선주파수 모니터 장비 등을 설치하고 함에서 빠져 나오고 있었다.

날씨는 비가 올 듯 썩 좋지 않았다. 김대령은 현장과 준비 상태를 둘러보고 무리 없이 사격을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준비 완료. 우준장의 사격 허가가 내려지고 김대령은 발사에 따른 명령을 각 함정에 힘차게 지시했다. 곧이어 백상어도 나대용함에서 힘차게 쏘아졌다.

P-3C는 소노브이를 투하해 백상어의 움직임을 포착해 나갔다. 지휘함인 광개토대왕함의 전술통제실은 P-3C 등 항공기로부터 보고되는 무전음만이 들려오고 운용 장비의 불빛이 실내를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백상어는 조금씩 표적함을 향해 계속 항주해 나갔다. 표적 명중 예정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시험에 참여한 모든 이는 숨쉬기조차 부담스러워했다.

명중 예정 시간이 됐다고 생각되는 순간 이박사는 머릿속이 텅 비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있어야 될 관측 헬기로부터의 표적 명중 보고가 없었다. ‘뭐가 문제지? 예비 실사에서 그 먼 거리의 작은 표적도 정확히 명중시켰는데…, 뭐가 잘못된 걸까?’ 이박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더 이상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박사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전술통제실에서 나오고 말았다. 그의 등 뒤로 박영일 박사의 낮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문제 없을 거야. 조류 때문에 약간의 시간적 오차가 생길 수 있으니까 조금 늦어지는 것뿐이야.” 박박사 역시 입안이 바싹 말라가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때 P-3C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백상어 정상 주행 중. 5번 소노브이 접촉!” 백상어는 표적함에 가장 근접해 있는 소노브이를 지나 표적함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박사와 박박사는 귀가 활짝 열림을 느꼈다. 잠시 후 벅찬 목소리가 울렸다. “백상어 표적 명중!” 기다리던 이 한마디, 모든 상념이 모두 바다로 녹아내렸다.

이박사를 비롯한 연구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 좋아진 소프트웨어를 탑재하고 기력이 더 왕성해진 백상어를 확인, 증명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박박사는 밖으로 달려나가 참관 요원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모두들 표적 방향으로 귀를 기울였다. 거리로 볼 때 표적 명중 후 2분 가량 지나야 백상어 폭발음이 지휘함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낮은 저음의 폭발음이 멀리서 들려왔다. “구구궁궁…” 정말 기분 좋은 이 짜릿한 소리, 이 희열이 얼마만인가. 남아 있는 한 발도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2006. 5. 8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5-08 22:5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