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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국산무기개발 비화 - 어뢰 백상어·청상어 (53)

“분위기 좋았는데….”

두 번째 백상어를 발사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첫 발사의 화끈한 명중에 연구원들은 물론 참관자·승조원 모두가 두 번째 발사에 대한 기대감에 설레고 있었다. 하지만 해상의 기상이 점점 악화됐다. 비가 내리고 바람도 조금씩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P - 3 C 해상초계기와 헬기 운용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발사는 가능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러나 끝내 두 번째 발사는 취소, 연기됐다. 이날 확실하게 종지부를 찍고 싶었던 연구팀으로서는 아쉽기 짝이 없었다.

“수장제(水葬祭)를 지내주지 못한 탓일까?”

누군가 툭 한마디 던졌다. 조금 전 1차 발사 때 폐예인정이 백상어에 의해 침몰될 것을 생각해 동해 바다 깊은 곳에서 부디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수장제를 지내줬는데 2차 발사 표적이 되는 폐유류 바지에 대해서는 미처 준비를 못해 수장제를 지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5월 24일. 언제든 표적을 명중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 같은 해역에서 두 번째 전투탄 사격 시험이 진행됐다. 이번에는 배가 물에 잠기는 흘수가 매우 낮은 폐유류 바지가 표적함이 됐다. 거리도 지난번보다 훨씬 멀었다. 시험 조건이 더 까다로워진 것이다.

연구팀은 발사 준비를 하는 가운데 표적함에 장비 설치를 마치고 수장제를 잊지 않았다. 발사 시험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원인 동시에 발사 성공을 고대하는 간절한 마음의 표시였다.

이윽고 지휘함인 광개토대왕함 함교에서 발사가 지시되고 백상어는 표적을 향해 짙은 바닷물 속을 헤치고 나갔다. 백상어 항주를 추적하는 광개토대왕함 전술통제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그렇기는 해도 긴장은 덜했다. 이번에도 틀림없이 명중할 것이라는 신뢰가 더해진 까닭이다.

“백상어 명중!”

백상어를 추적하며 표적함 인근을 비행하던 항공기로부터 명쾌한 보고가 전술통제실에 전달됐다. 20초 뒤 두 번째 보고가 이어졌다. “표적함 침몰 완료.” 이재명·박영일 박사 등은 이제 백상어와 함께한 길고 긴 연구 개발의 노정이 이제 비로소 끝났음을 눈빛으로 주고받았다.

백상어 실사격 실패의 원인을 찾아 분석하고 시험하기를 9개월여, 참으로 어렵고 힘겨운 기간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지만 연구팀이 수행한 일이란 소프트웨어의 수정뿐이었다. 다시 말해 수면 근처에서의 백상어 주행 로직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근접 신관의 작동 범위를 조절한 것이었다.

이로써 백상어는 중어뢰로서 중·대형 함정뿐만 아니라 흘수가 낮은 작은 함정이라도 원거리에서 명중, 격침시킬 수 있는 능력을 추가로 갖게 됐다. 더불어 국내에서 개발한 무기 체계에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항상 즉각적으로 대처해 성능을 보장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사업책임자 이박사 등은 광개토대왕함에서 귀항을 위해 고속정으로 옮겨 탔다. 봄날의 바닷바람이 더없이 상큼했다. 모두들 수고했노라며 그동안 가슴에 담아 두었던 쓰라린 이야기를 털어 내며 웃음꽃을 피웠다.

이제 어떤 아픔도 없으리라. 모두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그리고 마음 써 준 많은 분들과 한자리에 모여 소주 한 잔 기울이자는 말에 공감했다.

“짧게 좋아하자구요. 아직 청상어가 남아 있잖습니까.” 신형 경어뢰 청상어의 사업책임자이기도 한 이박사가 시험 평가 중인 청상어를 언급하며 긴장을 늦출 시간이 없음을 일깨워 줬다. 그래도 고속정 위를 비추는 봄 햇살에 여유로운 나른함이 밀려옴을 느꼈다.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은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 출처 : 국방일보 신인호, 2006. 5. 15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5-15 19:0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