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정갑(頭釘甲)은 두루마기 형태(袍形)의 옷 안에 갑옷미늘(甲札)을 부착하는 방식의 갑옷이다. 두정갑은 겉에서 보면 갑옷미늘이 보이지 않고 갑옷미늘을 고정시키는 못머리(頭釘)만 보인다. 쉽게 설명해 지난회에 소개한 두석린갑 방식의 갑옷을 거꾸로 뒤집어 놓으면 두정갑 방식의 갑옷이 된다.

현재 조선시대 갑옷 중에 실물 유물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이 두정갑이다. 그만큼 보편적인 갑옷이었다는 의미다.

육군박물관에는 제94대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낸 이봉상(李鳳祥·1676∼1728)장군의 두정갑(사진)이 소장돼 있다. 이 두정갑은 김선규(육사2기)전 36사단장이 충북 청원군청 창고에서 발견, 1966년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이강칠 전 육군박물관장은 “최고위급 장수가 입었던 갑옷 중 착용자가 분명한 것은 이봉상 장군의 두정갑이 유일하다”며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갑옷”이라고 설명했다.

두정갑은 문헌기록상으로는 조선 성종(成宗·1457∼1494) 시대에 발행된 ‘병기도설’(兵器圖說)에 처음 등장한다. 조선 초기의 두정갑은 청색 면포(綿布)로 만든 옷 안에 쇠로 만든 갑옷미늘을 부착한 방식의 갑옷이었다.

조선 후기에 평화가 오래 지속되자 일부 장수들은 두정갑 대신 장식갑옷을 입는 경우가 있었다. 장식갑옷은 두정갑과 겉모습이 똑같지만 내부에 갑옷미늘이 없다. 갑옷미늘이 없으므로 방호력도 약하고 당연히 실제 갑옷으로서의 효과는 없다.

그럼에도 장식갑옷을 입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관통력이 강한 화약무기의 등장으로 갑옷 자체의 효용성이 떨어진 시대상황 때문이고, 둘째는 무게가 최소 12kg 이상인 두정갑을 입는 것을 귀찮게 생각한 장수들이 가벼운 장식갑옷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장식갑옷과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가 남아 있다.

영조(英祖) 18년(1742) 열병식 중 국왕이 한 장수가 장식갑옷을 입은 것을 발견했다. 영조는 “장수들이 장식갑옷을 입는 것은 무거운 갑옷을 입는 병사들과 함께하는 뜻에 어긋나므로 다시는 입지 말라”고 지시했다.

현재 전해 오는 실물 유물에서도 장식갑옷이 흔히 발견된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정공청(1563∼1643)·정충신(1576∼1636)장군의 갑옷도 장식갑옷에 해당한다.

이처럼 국왕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규정보다 일신의 편안함을 추구한 장수가 많았다. 갑옷 유물 하나만 봐도 국방력이 약해지고 군 기강이 해이해지는 조선 후기의 시대 모습을 읽어 낼 수 있는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3.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