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성(城山城)은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 성재산(城齋山·471m)에 위치하고 있는 산성이다.

조선시대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위치와 둘레에 관한 간단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성산성의 존재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1996년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조사단에 의한 지표조사를 계기로 2000년에는 정밀 지표조사사업이 행해졌고 올해에는 정식 발굴조사가 계획돼 있다.

성산성은 우측으로 계웅산(604m)이 자리잡고 북방으로는 오성산(1062m)이 있으며 서쪽과 남쪽으로 500m 전후의 산지가 연결돼 있다. 성산성은 평강 방향에서 철원·화천·회양으로 가는 길목을 감시하며 방어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전쟁 중 철의 삼각지의 하나로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이 일대가 모두 초토화되고 말았다. 산성 주위에는 한국전쟁 당시 많은 참호가 구축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흔적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성산성은 성재산성(城齋山城)·자모산성(慈母山城)·가토산성(加藤山城)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성재산성은 성재산 이름에서 비롯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자모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가 평안도 자산(慈山)의 자모산성에 주둔했다가 성산성 부근으로 이동해 전투한 역사적 사실이 잘못 전해지면서 생긴 이름으로 보인다. 가토산성의 명칭은 임진왜란시 왜군이 김화에 주둔했는데 당시 이 산성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고 혹은 함경도 점령군이었던 가토군이 철군시 일시 주둔했을 가능성도 있다. 일부 성벽 구간에서 일본식 축성법인 왜성(倭城)의 흔적이 있어 왜군과 관련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성산성은 최소한 통일신라 시기에는 이미 존재했던 산성으로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계속 고치며 사용됐다고 할 수 있다. 성벽의 대부분은 붕괴됐으나 서남쪽 성벽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성벽의 총길이는 982m로 실측됐고 높이는 7m 내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에서는 성황지·우물지 등이 발견됐고 또 여러 개의 주초석 및 다량의 와편이 산재한 점으로 보아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산성과 그 주변 지역이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은 병자호란 때였다. 병자호란의 여러 전투 중에서 경기도 용인에서 벌어진 광교산 전투와 강원도 철원 김화 전투는 병자호란의 2대 승첩이다. 김화 전투는 남한산성에 피란 중인 국왕을 지원하기 하기 위해 평안도 관찰사 홍명구와 평안도 병사 유림(柳琳)이 평안도 근왕군을 이끌고 남진 중 성산성 부근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다.

평안도 근왕군 5000여 명은 평양을 출발, 1637년 1월 김화에 도착했다. 유림은 지형적으로 유리한 김화의 성산성으로 들어가 효과적인 방어작전을 펴자고 제의했지만 상관인 홍명구는 이를 거절하고 김화읍 생창리 탑골의 개활지에 주둔했다.

유림은 휘하의 3000여 명을 이끌고 홍명구 진영에 인접한 백수봉과 백전 능선에 진을 구축하고 청군과 대전했다. 이 지역은 유림이 제안한 성산성의 맞은편 서측 능선으로 240m 내외의 지형적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토성리에 주둔하고 있던 청군 6000여 명의 기병작전으로 홍명구 진영은 크게 패배하고 홍명구도 순국했다. 청군은 승세를 타고 유림 진영을 향해 총공격을 감행했다. 유림군은 방어진지에서 적의 파상공격을 무기와 병력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면서 적장을 사살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화살과 탄환이 떨어져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되자 철수계획을 세웠다. 유림은 총포에다 화승의 길이를 각각 다르게 해 잣나무에 걸어 두고 밤새도록 총포 소리가 울리게 해 적을 기만하고 야간에 안전하게 철군시켰다.

병자호란이 마무리된 후 탑골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홍명구를 기리는 충렬사(1650)와 충렬비가 세워졌고 또한 유림부대의 전투를 이끈 백수봉 아래의 대로변에는 유림대첩비를 세워 이를 기념했던 것이다.

조선 근왕군의 전몰자 유해는 피난에서 돌아온 김화 현령에 의해 수습돼 싸움터 주위에 5~6기로 나누어 가매장됐다. 그 후 다시 유해를 정리, 성재산 동쪽 기슭에 큰 무덤을 만들었다. 그 무덤이 바로 전골총(戰骨塚)이다. 김화에서는 매년 전몰일에 제향을 받들게 했는데 현재 전골총은 비무장지대(DMZ) 내에 위치하고 있다.

종래까지 홍명구와 유림이 싸웠던 김화 전투 현장은 철원군 근북면 백덕리 소재의 백동산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육군박물관의 지표조사와 문헌 자료 재검토를 통해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와 생창리 일원의 탑골과 백수봉을 중심으로 하는 백전(栢田) 일대가 김화 전투의 현장임을 새롭게 확인하게 됐다. 올해 예정된 육군박물관의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성산성의 축조 시기와 축조 방식, 왜성과의 관련성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강성문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교수·前 육군박물관장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