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나라의 군사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군사력은 국가의 존립 및 흥망을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찬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유럽의 군사박물관은 무(武)의 문화와 국방력이 국가와 민족을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소중한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다. 본지는 정전협정 50주년을 맞아 최근 유럽 6개국 군사박물관을 다녀온 김용남 전쟁기념관 학예연구관의 탐방기를 주 1회(토요일) 6회에 걸쳐 게재한다.

유럽 지역 군사박물관 탐방 첫 순서로 러시아의 전승기념관을 소개한다. 모스크바 시민공원 내에 위치한 전승기념관은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995년 5월9일 승전 50주년을 맞아 건립됐다. 기념관의 전경은 수직으로 우뚝 솟은 전승기념탑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퍽 인상적이었다.

전시관 입구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역사를 부각시키는 `병사들의 영광'이라는 조형물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전시실에는 스탈린·주코프 장군의 흉상과 유품, 러시아군의 무기·장비·복식류·문서류, 파괴된 전투기 잔해(殘骸) 등 한때 러시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와 함께 대(對)독일 전투에서 승리한 장면을 실감나게 재현해 놓은 6개의 대형 디오라마실은 관람객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호국추모실에는 전사한 아들을 껴안고 있는 흰색 모자상(母子像)과 천장 상부에 장식된 추모의 눈물을 상징하는 샹들리에 방울 등을 그 의미에 부합하도록 연출, 조국 러시아를 위해 몸바친 이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야외 대형 장비전시장에는 세계대전 당시 위용을 떨친 각종 항공기·전차·화포·잠수함 등 수많은 장비가 도열해 있었다.

전시된 장비들은 공격과 방어의 전술적 개념을 적용해 연출됐다. 특히 철로 위에 전시된 360㎜ 철도 화포는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데, 그 위력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할 정도로 대단했다. 이는 6·25전쟁 당시 105㎜ 화포(火砲) 외에 다른 화력장비가 없었던 우리의 현실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또한 웅장함을 자랑하는 전승기념탑은 러시아의 거대한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특히 기념탑의 중앙 부분에는 러시아군 기마병이 나치를 상징하는 말을 창으로 찌르는 모습이 형상화돼 여운을 남겼다. 전승기념관은 문화부 소속으로 관리·운영되고 있으며 전체 예산의 35%를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다.

기념관의 직원은 550여 명으로 이중 23%에 해당하는 125명이 학예연구·교육분야에 보직돼 전쟁사·전시품 연구와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한 교육 프로그램은 세계 강국으로서의 승전 역사와 상무정신을 고양하는 데 중점을 두고 청소년과 전역 장병과의 대화, 청소년들을 위한 제1·2차 세계대전사 등의 교육을 통해 승리한 러시아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자긍심 부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전승기념관을 둘러보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꼈다. 특히 러시아가 크고 작은 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한 바 있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국민이 강한 국방의식과 애국심을 갖고 일치단결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러시아가 구소련 붕괴 이후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국난 극복의 저력을 갖고 있음을 전시실 내의 수많은 전시품이 웅변하고 있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6.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