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북방 7㎞ 지점의 사천초등학교 앞을 지나다 보면 우뚝 서 있는 `강릉지구 전투 포병전공비'를 보게 된다. 그리고 학교 뒷동산에는 `3용사'의 묘비가 있어 이 두 곳을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특별하다.

53년 전, 전공비가 서 있는 그 일대는 제18포병대대 용사들이 북한군과 치열하게 육박전을 벌인 곳이다. 조명탄과 화력으로 밤을 새워가며 기동부대를 지원하던 포병은 날이 밝으면서 보병이 철수해 버린 탓에 적을 직접 상대하게 됐다.

“보병이 철수했으니 포병도 진지를 변환하라”는 사단장의 독려가 있었지만 포병용사들은 박치기와 쇠몽둥이로 맞서 적의 진출을 10시간이나 지연시킴으로써 향후 영천지구 전투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당시 전투 장면을 목격한 김봉기(65·전 사천면장)씨는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담임선생님이던 김용운 소위를 만나러 갔다가 백병전 장면을 봤다. 어찌나 격렬하던지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북한군 시체 수습에 강제 동원된 형들한테 들으니 북한군 시체는 200구가 족히 넘었다고 한다. 이때 발견된 아군 시체 3구가 가매장됐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200명이라는 숫자는 정전 후 소련군 라주바에푸 중장이 스탈린에게 보고한 내용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당시 대대장 장경석(張庚石·83·예비역 준장)장군은 “북쪽과 남쪽은 적이요 동쪽은 바다, 서쪽은 대관령이니 포병으로서는 독 안에 든 쥐의 형국이었다.

우리는 서북청년단 출신답게 군번줄을 모두 땅에 묻고 옥쇄를 각오하고 싸웠지만 안타깝게도 최서종 중사·한명화 하사·심우택 일병 등 3명의 전우를 잃었다”면서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시 강릉으로 침공해온 적은 오진우가 지휘하는 766유격대와 중국의 조선팔로군 출신 5사단, 그리고 549육전대와 제1경비여단 등 정예부대였다. 반면 이들과 맞선 8사단은 21연대가 오대산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한 관계로 10연대가 적에 맞섰지만 중과부적으로 27일 새벽 대관령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정황에 대해 최돈웅 의원은 “우리 강릉은 6·25전쟁 전부터 반공의식이 강했다. 무장공비의 잦은 출현으로 반공교육이 잘 돼 있었다. 학생들과 아주머니들이 주먹밥을 나르고 할머니들이 치마를 찢어 국군 부상병의 상처를 치료하던 그때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의 민·관·군 합동작전은 현대사에 남을 귀감”이라고 말한다.

필자가 포병전공비와 인연을 갖게 된 것은 전공비 건립 당시 대대장으로 참여한 때문이다. 부임한 1989년도에 참전 전우들과 강릉시 후원회(회장 염재근·작고)가 전공비 건립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고 육군본부에 전사(戰史) 자료로 정리해 보고한 결과 3600만 원에 상당하는 시멘트·철근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1억400여만 원을 모금해 91년 11월 18ｍ 높이의 전공비를 세울 수 있었다

올해 현충일에도 그곳에서는 기관장과 학생·18대대 장병이 어우러져 순직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가졌다. 현충일 행사를 보면서 53년 전 민·관·군이 함께 싸운 옛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더욱이 올해부터 현충일 행사비를 강릉시 예산에서 집행키로 했다. 민·군 관계가 더욱더 돈독해진 느낌이다.

이러한 일들은 국립묘지 안장을 마다한 채 강릉지역을 굽어보고 있는 `3용사'에게도 반가운 모습으로 비칠 것이다. 우리 다 함께 6월의 호국영령들에게 명복을 빌자.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6.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