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시대에 이어 고려 시대에도 쇠뇌는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예종(1079~1122)이 쇠뇌를 보유한 정예부대인 정노반(靜弩班)을 사열했다는 기록이나 묘청의 난(1135~1136) 당시 상장군 이녹천이 지휘하는 토벌군이 반란군의 쇠뇌부대에 전멸당했다는 ‘고려사’의 기록에서 고려 시대의 쇠뇌 사용 실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성을 방어하는 수성(守城) 작전시 쇠뇌를 매우 중시했다. 특히 김부의(金富儀·1079~1136)가 금나라에 대항할 방안을 논한 상소는 쇠뇌의 전술적 중요성을 잘 보여 준다.

이 상소에서 김부의는 “훈련된 기병들이 들판에서 접전해 승패를 겨누는 것은 북방 기마민족의 장점이며 성곽에 올라 강한 쇠뇌로 굳게 성을 지키는 것은 중국의 장점”이라고 분석하면서 “고려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중국의 장점을 본받아 성벽을 높게 세우고 쇠뇌와 독화살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이처럼 쇠뇌를 중시한 고려에서는 특수한 종류의 쇠뇌가 개발되기도 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덕종 1년(1032) 3월 상사봉어(尙舍奉御)라는 직함을 가진 박원작(朴元綽)이 수질노(繡質弩)와 팔우노(八牛弩)라 불리는 특수한 쇠뇌를 개발했다고 한다.

덕종 6년(1037)에도 박원작이 수질구궁노(繡質九弓弩)를 개발했다. 이를 본 덕종은 “매우 신기하고 교묘하기 그지없다”고 찬탄하며 “추가 제작해 각지 요충지에 비치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이 외에 박원작이 천균노(千鈞弩)라는 특수한 쇠뇌를 제작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전통 활과 화살을 제작해 온 무명문화재 47호 유영기씨의 아들이자 전수 조교인 유세현씨는 “수질노·팔우노·천균노는 이름으로 보아 성능이 강력한 쇠뇌의 종류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 실물이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 위력이나 성능은 불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이때문에 그 실상을 밝히기 위해 오래 전부터 학자들과 활 장인들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유조교는 “팔우노는 명칭으로 보아 중국의 삼궁팔우상자노(三弓八牛床子弩)와 유사한 무기일 것”으로 추정했다. 팔우상자노는 발사하기 위해 소 여덟 마리의 힘이 필요할 정도로 거대하고 강력한 기계식 쇠뇌였다.

천균노의 천균은 고대의 무게 단위로 현대 도량형으로 약 18톤에 해당한다. 이때문에 학자들은 천균노 역시 성능이 강력한 거대한 기계식 쇠뇌의 일종으로 짐작하고 있다.

수질구궁노의 경우 학자들 사이에서도 그 실체에 대해 의견이 갈린다. 일부 학자들은 팔우노와 유사한 거대한 쇠뇌라고 추정한다. 반대로 전통 무기에 대해 오래 전부터 연구해 온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강성문 교수는 수질구궁노는 아홉 개의 쇠뇌를 연결, 한꺼번에 발사할 수 있는 연노(連弩)의 일종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고려 시대의 쇠뇌 중에 실물이 남아 있는 것은 없으나 유영기·유세현씨가 추정 복원한 팔우노(사진)가 경기도 파주시 영집궁시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4. 7.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