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36사단에는 보병을 비롯해서 아직은 여군이 드문 공병과 헌병은 물론이고 의무대와 감찰부, 부관, 법무에 이르기까지 각 병과별로 여군이 골고루 분포돼 있어 눈길을 끈다. 여군의 역할이 부관이나 보병에 치중돼 있던 병과의 한계를 허물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자가 부대를 방문한 날 2명은 출산과 결혼을 사유로 휴가중이었다. 출산과 결혼은 ‘여군애사(女軍哀事) 1호’로 손꼽혔던 대목. ‘출산은 곧 영창’이었던 선배들을 보며 군생활을 시작한 장명자 상사는 아직도 그 시절을 기억한다. 그녀는 현재 두 아이의 어머니요, 아내인 동시에 육군상사다. 군복을 입은 지 어언 20년. 여군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뒤 부사관으로 임용됐을 때, 대부분의 여군이 그랬듯, 부관병과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다.


가족들과 ‘별거’…현실적 개선 필요

그리고 1989년 여군병과의 해체와 함께 야전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지나온 20년을 한마디로 ‘살아남았다’고 표현한다. 바늘 구멍같은 상위직으로 오르기 위해 “군에서 공부하듯 했다면 사법고시에도 합격했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공부했고, 여자화장실도 없던 초기 야전부대 시절부터 외로이 뭇시선을 받으며 여군으로서 남았다.

장 상사와 함께 속칭 ‘야전진출 여군 1세대’인 권윤영 대위는 1993년 임관했다. 1990년 여군병과가 해체되고 보병으로 배속돼 신교대 소대장으로 진출했다. 당시 권 대위와 함께 신교대로 배속됐던 20명 가운데 현재 5명만이 근무하고 있다.

그녀들은 여군을 위해 정책적으로 우선 보완해야 할 점을 ‘가족문제’라고 털어놓았다. 그녀들의 남편은 모두 현역군인이다. 현재 부부군인의 경우 10년에 한 번씩 같은 부대에 배속돼 함께 생활할 수 있다. 장 상사는 딱 한 번 이 제도의 혜택을 누렸다. 여군의 경우 유난히 부부군인이 많은데, “후배들은 5년에 한 번쯤 같은 부대에 근무하며 부부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녀의 말에서 함께하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난다. 권 대위는 부부군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세 집 살림을 한다. 세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날이 일 년에 손꼽을 정도다.

2001년 7월 임관한 최성미 중위는 소대장을 거쳐 현재 신교대 중대장이다. 그녀는 ‘금남의 영역’이었던 간호사에서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군인으로 변신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녀가 간호대학을 다닐 때 처음 남성의 입학이 허용됐다. 그녀는 간호계에도 남성의 역할이 필요하며, 군에서도 여성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단언한다. 간호원이 되려는 남성도, 군인으로 살고자하는 여성도 사회적 ‘편견’이나 ‘고정관념’때문에 차별 받아선 안 된다고 말하는 모습이 당차다.

처음 소대장으로 신교대에 섰을 때, 그녀를 만만히 보고 ‘불온하게도’ 항명했던 병사를 잊을 수 없다. 주먹 깨나 쓸 것 같은 덩치 앞에서 움찔했다. 병사들 앞에선 도저히 기로 꺾을 수 없을 것 같아 머리를 썼다. 소대장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사정없이 호통을 쳤다. 그 뒤 누구도 그녀를 만만하게 보지 않았고 그녀도 자신감이 생겼다.

이제 막 소위계급장과 하사계급장을 단 법무부의 김영화 하사와 공병대의 김혜진 소위는 ‘여군발전을 위해 정책적으로 보완됐으면 하는 게 무언가’라는 질문에 ‘아직은 모르겠다’고 한다. 솔직한 표현이다. 하루하루 제 역할을 해내기도 숨가쁘다. 그녀들은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이 자리에 섰다. 원하던 길을 걷게 된 지금, 그녀들의 온 가슴은 의욕으로 가득 차 있다

헌병병과는 여군들 사이에서 가장 진급이 어려운 병과로 손꼽힌다. 최근 계급장을 바꿔 단 김희정 중사는 요즘 축하받기 바쁘고 하루하루가 즐거울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애로사항을 묻는 건 너무 성급한 질문 같아 보인다.

공병을 자원한 김혜진 소위는 가장 외로운 섬이다. 사단의 공병대대는 사단 본부와 멀찍이 떨어져 있어 며칠씩 여자 얼굴 한 번 못 보고 사는 날이 허다하다. 게다가 날마다 중장비와 모래바람과 부대껴야 하는 일이 어디 편하기만 할까. 하지만 ‘아쉬운 것 없다’고 한다. 여군으로선 개척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공병으로서 그녀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기대도 크다.


“우리 女軍들을 지켜 보세요”

고참 신참 막론하고 그녀들의 가장 큰 바람은 한결같다. 여군인력 확충이 단순히 머릿수 늘리기가 아니라 진급 수준의 확대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3년의 단기복무가 끝나고 장기복무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서 첫 관문때보다 심한 홍역을 치른다.

여군의 경우 대체로 장기복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여군인력 확대와 함께 여군의 사기증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상위직급에 대한 적정한 보장이 아닐까.

그녀들의 열정에 덩달아 후끈해진다. 지금의 희망과 열정이 제도의 아쉬움으로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군복을 선택한 이들이 아닌가. 아울러 여군인력 활용을 위한 발전적 고민과 함께 여군들이 제 몫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36사단장 이하 지휘부에 경의를 표하며 이 같은 노력은 결국 군의 전투력 향상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 기대한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7.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