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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였다… 이건 게임이 아닌 실전이다”
'한국전쟁, 미군병사들의 기록'
 6·25전쟁 때 한국을 구하기 위해 참전했다 전사한 미군의 수는 3만6000명이 넘는다. 부상한 사람은 훨씬 많아 9만2000명이 넘고 실종자도 8000여 명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참전 미군 13명 중 1명 비율로 전사했고, 베트남전에서는 17명 중 1명, 걸프전에서는 5000명 중 1명이 전사했다. 이에 비해 6·25전쟁에서는 참전 미군 9명 중 1명 꼴로 전사했다. 미군이 참전한 그 어떤 전쟁보다 인명 손실률이 높았던 전쟁, 그것이 바로 6·25전쟁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평소부터 알고 있었던 미군 병사들은 거의 없었다. 그들의 조국인 미국 정부의 명령에 따라 ‘알지 못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낯선 산하’에서 목숨을 희생하며 분투했던 것이다.
‘한국전쟁-미군 병사들의 기록’은 그 같은 미군 장병들의 피와 땀, 삶과 죽음, 슬픔과 감동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당시 미국은 강한 나라였다. 미군도 강했다. 하지만 전장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진 미군 병사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들은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개마고원의 혹독한 겨울 추위에 몸서리쳐야 했고, 800m가 넘는 험난한 고지군을 올라가며 숨을 헐떡여야 했다. 동료 전우들이 피를 흘리며 죽는 전장에서 공포·분노와 맞서 싸워야 했다.
이 책에는 미군 참전 장병들이 6·25전쟁에서 느낀 것은 무엇이고, 전쟁에서 어떻게 싸웠는지를 보여 주는 생생한 체험담이 담겨 있다. 원서(Face of War)에는 201명의 참전자 수기가 실려 있지만 이번에 출간된 한글 번역본에는 총 113명의 수기를 담았다.
육군과 해병대의 소총수들을 시작으로 전투기 조종사, 해군 구축함의 수병에 이르기까지 그마다 다른 위치에서 느낀 전투 경험담을 담아낸 것이 이 책의 특색이다.
전쟁에서 느낀 감상은 그야말로 100인 100색이다. 어쩔 수 없는 전쟁의 비극을 실감한 이들도 있다.
“십여 명씩으로 된 여러 무리의 적병들이 참호를 뛰쳐 나와 능선으로 오르려 했으나 집중 사격의 탄막을 뚫고 진출에 성공한 적군은 거의 없었다. 나 역시 7~8명을 향해 쏘았고 그중 한 명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마침 그 순간에 발사했던 사람은 나뿐이었으므로 이는 분명히 내가 명중시킨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이 실감됐다. 이것은 게임이 아닌 실전이었다. 우리 인류는 지금 서로 간에 도살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글렌 저스티스 병장·7사단 31연대)
사상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으나 혹독한 추위에 땅이 얼어붙어 아군 전사자를 세겹, 네겹으로 쌓아올렸다는 7사단 제임스 블롬 하사의 증언은 전장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 준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동료 미군 포로를 무참하게 학살했던 공산군의 만행을 전하는 2사단 에드워드 그레고리 상병의 수기 제목은 ‘죽음의 행진’이다.
해병대1사단의 존 바스타인 상병은 얼마나 추웠는지 침낭의 지퍼가 얼어붙어 열리지 않는 가운데 적의 습격을 받아 침낭 속에 갇힌 채 죽을 뻔한 아찔한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장진호 전투에서 격전을 치른 같은 부대 와랜드 커쉬 하사는 중공군 전사자의 시체를 확인하다 100명이 넘자 숫자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고 고백한다.
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통역장교로 근무한 육군3사단의 리차드 카그 대위는 카투사들의 희망 병과를 통역하다가 기병과 공병을 잘못 발음해 기병을 꿈꾸던 수많은 젊은이를 공병으로 보내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기적 같은 사연을 전하는 이들도 있다. 7사단의 로버트 존스 대위는 전투복 상의를 뚫고 들어온 적의 30구경 기관총탄을 맞고도 살아남은 경험담을 전한다. 총알이 왼쪽 가슴속에 들어 있던 쇠단추를 맞은 후 빗나가 50페이지짜리 수첩을 뚫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역사적 가치가 담긴 증언들도 많다. 일반적으로 최초의 미 육군 참전부대로 알려진 스미스부대보다 앞서 6월 29일 한국에 도착, 전투까지 수행했음을 전하는 미 87유격중대의 안토니 비벨 선임상사의 증언이나 1950년 6월 개전 초 최초로 한반도로 출격, 폭파된 한강교에 막혀 정체된 북한군 대열을 향해 기총소사를 가했던 월터 브라이언 중위의 증언 등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육군24사단의 벤 로브츠 하사는 전장에서 사살한 적군 중에 소련군 장교가 있었음을 전하는 목격담을 내놓아 일선부대에도 관전장교 혹은 고문관 역할을 했던 소련군이 존재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미 국내에 알려진 일화이긴 하지만 옛 궁궐과 창덕궁 금원의 가치를 인식하고 포격을 연기해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낸 제임스 딜 중위의 경험담도 눈길을 끈다.
편역 작업 마무리와 출간을 총괄한 김남형 한국국방연구원 홍보협력담당관은 “이처럼 많은 미군 참전용사의 증언을 고스란히 모은 책은 국내에 없었다”며 “6·25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와 국군 장병들에게 정신 전력 차원의 자료로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문의 02-455-6197
< 출처 : 국방일보 김병륜, 2008. 7. 24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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