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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재상’ 실용을 택하다

‘관념적 성향이 강한 퇴계 이황의 직계 제자임에도 누구보다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 양반층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천민의 군 입대를 허용하고 격렬한 반대 상소에도 불구하고 직업군인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을 창설했으며 조총병을 집중 양성한 인물.’

그 주인공이 다름 아닌 임진왜란 당시 명재상으로 유명한 서애 류성룡이다.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대표적 인물이 바로 류성룡이라고 할 수 있다. 야전 군인 중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면 외교와 군정 분야에서는 류성룡이 가장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평가다.

조선시대에는 원래 노비들은 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됐다. 부유한 양반층에서 노비를 많이 거느릴수록 국가 병역 자원 차원에서는 심각한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 류성룡은 양반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천민들도 속오군의 입대 대상으로 삼는 개혁을 단행했다. 백성들이 부담하는 온갖 잡다한 세금과 공납 의무를 쌀 납부로 통일하자는 대담한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개혁적 제도로 손꼽히는 대동법과 유사한 발상을 이미 류성룡이 내놓았던 것.

류성룡이 우리도 조총병을 군대의 주요 전력으로 양성하자고 했을 때 이런 제안을 비웃으며 활을 주력무기로 사용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 이들도 적지 않았다. 류성룡은 이런 주장을 일일이 반박하면서 조총을 주력 무기로 하는 직업군인만으로 별도의 군대를 만들었다. 이처럼 류성룡은 명분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실용적 접근으로 전쟁 위기 극복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학계에서도 이런 점을 감안해 류성룡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하나의 유행이 되고 있다. 특히 류성룡 서세 400주년이었던 지난해에는 관련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육군사관학교와 안동시민회관에서 류성룡의 생애와 업적,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하늘이 내린 명재상’이라는 타이틀로 류성룡 유물 특별전까지 개최했다.

대중적 역사교양서의 저자이자 신문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이덕일 씨가 류성룡의 평전까지 펴낸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새삼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류성룡 재조명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이성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태진 서울대 교수 등이 공저자로 참여한 ‘류성룡과 임진왜란’은 이 같은 서애 재평가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출간된 책이다.

유사한 주제를 다룬 ‘류성룡의 생애와 경륜’이 딱딱한 논문집이라면 신작 ‘류성룡과 임진왜란’은 좀 더 대중서에 가깝다. 학술논문의 품격을 갖추면서도 일반인들이 읽어도 그리 어렵지 않은 주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두 차례에 걸친 관련 전문가 좌담회 내용을 정리한 부분이다.

이 위원장과 이 교수에 더해 정만조 국민대 교수, 이헌창 고려대 교수 등 관련 학계의 거물급 인사는 물론 권오영 한국학 중앙연구원 교수, 오종록 성신여대 교수, 한명기 명지대 교수 등 역사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진급 학자까지 참여해 류성룡과 임진왜란에 대해 논한 좌담회 내용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류성룡을 실학 사상의 뿌리로 간주하는 가설이 제기되는가 하면 임진왜란을 무역전쟁의 일부로 볼 수 있는지 여부, 이이의 10만 양병설이 진실인지 여부 등 민감하고도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학계 거물들의 직설적인 논쟁이 이어진다. 특히 전시 위기 관리의 주역이었던 류성룡의 정책들을 부국안민 개념으로 요약하고, 이를 유럽의 중상주의와 연계시켜 해석하려는 시도 또한 매우 흥미롭다. 문의 031-955-7554

< 출처 : 국방일보 김병륜, 2008. 9. 4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8-09-04 18:2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