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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느냐 죽느냐는 훈련에 달렸다

언씽커블 <아만다 리플리 지음/다른세상 펴냄 >

오하이오 주 톨레도의 경찰 찰스 흄스는 신참 경찰시절 전속력으로 자동차 추격전을 펼칠 때 몸도 마음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을 경험했다.

위험 상황에서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터널 효과가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극도의 흥분으로 무전통신으로 악다구니에 가까운 고함만 질렀다. 나중에 녹음된 무전을 들어보니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찰스 흄스는 이런 흥분이 자신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음을 알고 ‘위험상황’에서 흥분하지 않는 법을 훈련했다. 그의 비결은 간단하다. 매일 5~10분 가량 경찰 사이렌 소리를 시끄럽게 틀어 놓은 상태에서 숨을 깊게 들이마시다가 또다시 넷을 세면서 숨을 멈추고, 다시 넷을 셀 동안 숨을 뱉었다. 흄스는 이 같은 4 : 4 : 4 호흡법을 통해 이제는 긴급출동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냉철한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

미국의 경찰관 짐 시릴로는 10년 동안 사격교관으로 일했지만 실제 상황에서 총격전을 경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짐 시릴로가 실제 범죄자와 맞서야 하는 잠복근무반에 투입됐을 때 두려움과 걱정이 가득했다. 잠복근무반에서 첫 번째로 범죄자와 총격전을 벌였을 때 그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강도 한 명이 눈앞에서 무언가를 흔들고 있을 때, 손수건을 흔드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그의 총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총끝에서 불꽃이 튀는 것이 보였다. ‘대체 누가 총을 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그의 손에서 회전식 연발권총이 일으키는 충격을 느꼈다.

결국 시릴로는 자신이 의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권총을 쏜 것이다. 시릴로는 반복적인 훈련으로 무의식적인 기억이 근육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 때의 상황을 해석한다. 머리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조건반사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시릴로는 총격전에서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없이 ‘가늠쇠로 초점을 맞추면서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기면 쉽게 맞힐 수 있을 거야’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몸의 움직임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대응법이라고 주장한다. 훈련된 무의식의 힘을 믿자는 것이다.

위 두 사례는 미 타임스의 기자 아만디 리플리의 저서 ‘언씽커블’(원제 The Unthinkable)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은 화재·테러·총격전·폭발사고·홍수 등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마음과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추적한 흥미로운 저서다.

저자는 온갖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의 대처 과정에 대해 현장감 가득한 기자적 관점으로 풀어나간다. 9·11 테러부터 비행기 추락사고 등 온갖 종류의 재난에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때로는 몸속의 특정한 신경물질이 위험에 대처하는 사람의 반응을 좌우하기도 한다.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의 일종인 ‘신경펩티드 Y’는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되찾아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도록 도와준다.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인 찰스 모건 3세는 특수부대 병사들이 일반 병사들에 비해 ‘신경펩티드 Y’를 훨씬 많이 생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건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가한 상황에서 혈액검사만 해 봐도 특수부대 병사와 일반 병사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신경펩티드 Y’의 양에 차이가 많았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차이가 훈련의 결과인지 유전적 차이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저자는 극한상황에서 인간의 신체가 매우 기묘하게 반응한다고 지적한다. 시야가 극도로 좁아져 일부밖에 보이지 않는 터널효과가 나타나거나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흘러가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떤 때는 날아가는 총알이 보이거나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사물이 커다랗게 보이기도 한다. 혹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마치 현실이 아니고 꿈속의 일처럼 보여 현실감각을 상실할 때도 있다.

저자는 이처럼 몸과 마음이 통제를 잃고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두뇌가 제대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그 상황을 되풀이해서 체험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다. 위에서 언급한 두 경찰관의 사례에서 보듯이 훈련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는 결국 훈련에 달린 셈이다.

< 출처 : 국방일보 김병륜, 2009. 1. 22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9-01-22 18:2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