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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이집트서 걸프전까지 군사 역사

세계군사사사전 <듀푸이 지음/허중권 번역/학연문화사 펴냄>

사전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다. 백과사전에서 영국의 브리태니커, 한자사전에서 일본의 대한화사전 등 유명 사전류가 지니는 권위는 일반인은 물론 전문적인 학자들의 세계에서도 존중받는다.

군사사(軍事史)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전으로 미국 듀푸이의 세계군사사사전(원제 The Harper Encyclopedia of Military History from 3500 B.C. to the Present)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유명한 듀푸이의 세계군사사사전이 초판 발간 40여 년 만에 드디어 한국어로 번역됐다.

듀푸이의 세계군사사사전은 1970년 최초 간행 이후 현대 군사 분야의 변화를 반영해 1976년 2판, 1985년 3판, 1993년 4판이 잇따라 간행됐다. 이번에 출간된 세계군사사사전(사진) 한글본은 1991년 집필을 마치고 1993년 출간된 4판을 번역한 것이다.

세계군사사사전을 10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주인공은 허중권 육군3사관학교 군사사학 교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신라통일전쟁사의 군사학적 연구’로 교원대 박사학위를 받은 허 교수는 그동안 한국의 역대 전쟁사와 군사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작업에 매진해 왔다.

군사학적 기반을 갖고 전통 전쟁사에 접근한 허 교수의 연구 성과들은 사학계에서 꾸준한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런 허 교수가 세계군사사사전을 번역한 것은 군사사 연구작업 때 세계군사사의 전 영역을 망라하는 신뢰할 만하고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참고자료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세계군사사사전의 저자는 미 육군대령 예편 후 전쟁사와 군사사 저술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어네스트 듀푸이와 트레버 듀푸이(1916~1995) 부자다. 군사사 분야에서 이들의 이미 거둔 명성 때문에 세계군사사사전은 1970년 최초 출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미권 군사사 연구가로부터 표준적인 참고서적으로 떠올랐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듀푸이의 사전은 기원전 3500년 전 이집트 시대부터 1990년대 초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군사 역사의 각 사건들을 사전식으로 요약한 책이다. 사전 표제어들은 전쟁과 전투 중심으로 선정돼 있지만 특정한 시대의 군대, 전투 이외의 군사 역사상 주요사건, 장비 등도 포함돼 있어 제목 그대로 군사사사전의 갖춤새를 자랑한다.

저자인 듀푸이 부자는 오랜 인류의 군사 분야 발전 역사를 22개 단계로 구분해 각각의 시대마다 전반적인 군사 역사의 흐름을 먼저 정리한 후 전술·전략·무기체계·군사제도·전쟁·전투·반란 등 군사 분야의 모든 항목을 전문가 시각으로 소개하고 평가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일반적인 사전과 달리 각 표제어 항목들을 알파벳 순서가 아니라 연대기 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다시 말해 이 사전의 첫머리는 a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사의 여명’으로 시작한다. 이런 독특한 편집 방식 때문에 이 책은 사전 형식으로 서술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서적처럼 통독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군사사의 모든 영역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권위 있는 설명이 들어 있는 듀푸이의 세계군사사사전이 한글로 번역됨에 따라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이나 군사 분야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에게도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글판의 경우 총 1800페이지에 달할 만큼 분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주요 표제어에 대해서는 권말에 다시 상세한 한글 색인을 첨부해 궁금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정성을 들여 출간했다. 다만 거의 전집류에 가까운 책 가격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아쉬움을 자아낼 것 같다.

사실 군사 분야 백과사전 편찬에는 서구권 못지않게 러시아·중국 등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도 노하우가 풍부하다. 구 소련 시절 발행된 ‘소련군사백과사전’이나 중국의 ‘백과사전 군사편’, 혹은 ‘군사백과사전’ 등은 군사학의 다양한 분야를 사전 형식으로 성공적으로 정리한 책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웃 일본의 경우에도 자국의 군사사는 이미 사전류로 정리한 명저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 사회주의권 군사학 사전들은 우리나라 군사학과 기본 체계에서부터 차이가 나고, 언어적·이념적 이유 때문에 이용하기엔 한계가 있다. 외국의 군사사사전도 우리나라 군사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역시 한계가 없지 않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민간대학에 군사학과가 설치되는 등 군사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될 수 있는지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군사사사전의 한글 번역본 출간에 기뻐하면서도 앞으로 우리 고유의 시각을 담은 수준급의 군사백과사전이나 군사사사전이 나오길 희망하는 것은 때이른 기대일까. 문의 02-2026-0541

< 출처 : 국방일보 김병륜, 2009. 3. 26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9-03-26 18: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