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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법사 <한스 델브뤼크 지음/학술정보(주) 펴냄>
유럽 전쟁사의 대표적 고전
 매우 가치 있는 책임에도 때로는 한국어 번역본이 나오기를 아예 포기하는 책들이 있다. 책의 분량이나 번역의 난도, 대중성 등을 고려했을 때 번역본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책들이 있다는 뜻이다.
한스 델브뤼크의 ‘전쟁술의 역사(Geschichte der Kriegskunst)’도 그런 책들 중 하나다. 독일 실증사학의 전성기에 집필된 이 책은 유럽 전쟁사와 전쟁술 발전사에 관한 고전 중의 고전이자 명작 중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무려 네 권에 달하는 분량도 문제지만 일반적인 사전에 잘 나오지도 않은 독일식 전문용어가 가득한 데다 원전 사료로 라틴어 문장까지 여기저기에 인용하고 있어 어지간한 결심으로는 번역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이 책이다.
그처럼 번역의 난도가 높은 델브뤼크의 ‘전쟁술의 역사’가 한글로 완역됐다는 것은 군사·안보 분야 관계자들에게는 그 자체로도 뉴스거리가 될 만한 일이다. 민경길(대령 전역) 전 육군사관학교 법학과 교수가 과거 육군에서 시도했던 1권 번역작업을 토대로 델브뤼크의 저서 4권을 모두 번역, 최근 ‘병법사’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델브뤼크의 저서는 일반적인 전쟁사나 군사사 개론서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를 자랑한다. 저자는 당대 사료를 꼼꼼하게 일일이 확인하며 하나하나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한다. 때로는 현지 답사를 통해 사료의 오류 가능성도 일일이 체크하는 것은 이 책이 취한 방법론 중 백미라고 할 만하다.
유명한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침공군의 규모가 264만1610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델브뤼크는 독일군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대규모 부대의 현실적 행군 장경 규모를 산정한 후, “기록대로의 규모라면 페르시아군의 행군 장경은 3150㎞에 달했을 것”이라고 기록의 불합리성을 비판한다.
이처럼 델브뤼크는 전략과 전술, 편제, 보급 문제, 행군 및 전투장소의 지형 등을 토대로 전투와 관련된 모든 숫자를 고집스럽게 검증해 낸다. 전쟁과 전투의 각 국면과 과정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용 가능한 거의 모든 사료를 토대로 검증을 시도한다. 사실 현재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전쟁사 입문서나 개론서들이 추호의 의심도 없이 단정적이고 선언적인 어투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사실 델브뤼크 같은 전쟁사와 군사사 연구의 대가들이 오랜 세월 끈질기게 연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전쟁사 입문사들이 결론만을 보여준다면 델브뤼크의 책들에는 그 같은 결론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전쟁사 연구 방법론의 실증적 사례를 보여주는 책으로도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군 출신 학자들이 델브뤼크식의 방법론을 적용, 우리나라 후삼국시대 전쟁사 기록을 검증하려 시도한 사례가 있었을 정도다.
델브뤼크의 이 책은 전쟁사, 병법사, 군사사, 전쟁술의 역사 등 여러 가지 단어로 번역된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어 원서 제목의 사전적 의미와 관계없이 이 책은 전쟁사와 군사사, 혹은 전쟁술의 역사 등 특정한 성격으로 규정할 수 없는 포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전쟁사로도 손색이 없는 책이지만 이 책을 전쟁사로만 특정지우기 힘든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모든 민족의 생존은 그들의 군대조직에 크게 좌우되고, 군대조직의 성패는 전투기술과 전술 및 전략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책은 그처럼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전투기술과 전술 및 전략의 발전과정을 전쟁사를 통해 보여주는 책인 셈이다.
이 책의 1권이 다루고 있는 시대는 그리스와 로마시대다. 2권은 민족 대이동 후 중세로 전환되는 시기를 다뤘다. 3권은 중세시대의 전쟁을 설명했다. 4권은 르네상스 이후 나폴레옹 전쟁과 클라우제비츠가 활약한 19세기 초반까지 다루고 있어 전근대 전쟁은 포괄적으로 이 책의 서술 범위 안에 들어 있다.
공간적 범위로 보자면 페르시아나 아랍 등 서남아시아 지역도 부분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유럽 지역에 서술의 중점을 뒀다.델브뤼크의 저서는 영어로도 번역이 됐을 뿐만 아니라 구소련 국방성에서도 러시아어로 번역한 일이 있다. 여기에 뒤이어 이제 우리나라도 자국어로 델브뤼크의 명저를 감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번역했다는 민경길 전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고대부터 근대까지 전투기술과 전술 및 전략의 발전과정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역 장교들이 이를 기초로 현재와 미래의 전투와 전쟁에 대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문의 031-908-3181
< 출처 : 국방일보 김병륜, 2009. 9. 10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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