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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내부 갈등이 패배 자초’ 진리 일깨워
히틀러 최고사령부 1933~1945년 <제프리 메가기 지음/플래닛미디어 펴냄>
 탁월한 전문성을 가진 독일군 장교들과 감정적이고 독단적이었던 히틀러. 이 상반된 이미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승리와 패배를 설명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스토리를 반영한다.
독일군 장교들은 악조건 속에서도 전문성을 바탕으로 전술적 성공을 거뒀지만, 군사 분야에 문외한이었던 히틀러가 전략적으로 너무 자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독일이 패전했다는 것.
미국의 사학자인 제프리 메가기는 이처럼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역사 인식이 실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밝히는 데 주력한다. 저자는 히틀러가 수많은 과오를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국방최고사령부(OKW)나 육군최고사령부(OKH)의 장교들에게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이 패배한 후에도 생존했던 독일군 고위 장성들이 모든 과오를 히틀러에게 뒤집어씌움으로써 자신들이 범한 과오를 은폐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진실성을 검증할 수 없는 사후 회고록이나 구두 증언의 이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전쟁 중 작성된 문서나 개인기록을 위주로 독일 지휘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추적해 간다.
저자가 주장하는 진실은 이렇다. 전쟁 중 독일 국방군 최고사령부와 육군 최고사령부의 대립과 혼선이 전쟁 수행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국방군 최고사령부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해군과 공군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국방군 최고사령부는 때로는 개별 전구 차원의 작전을 직접 지휘하는 등 육군 최고사령부의 경쟁자처럼 행동했다.
육군 최고사령부의 장교들도 시종일관 국방군 최고사령부를 견제하고 가능한 한 간섭받지 않기 위해 사사건건 대립하기까지 했다.이런 혼란과 대립 속에 지휘계통이 매우 모호해져 일선 부대가 서로 상반된 내용의 지시를 받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전쟁 중 국방군 최고사령관은 물론 육군 최고사령관까지 겸임하게 됐던 히틀러가 때로는 특정한 집단군 사령관 역할까지 맡은 기묘한 행태를 보임에 따라 지휘계통과 권한 분담은 더욱더 엉망진창이 됐다.
저자는 전반적으로 독일의 전쟁 지휘부는 책임과 권한의 한계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각 부서와 기관 사이에 대립과 경쟁의식이 조장됐을 뿐만 아니라 전쟁 수행 노력이 제대로 통합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독일군 내부의 문화에도 문제의 여지가 있었다. 독일은 작전을 매우 중시했고 상대적으로 인사와 군수, 정보 분야를 경시했다.
보직자 계급 부여 기준이나 발언권 등 모든 측면에서 인사, 군수, 정보 분야 작전보다 상대적으로 약했다. 이 같은 관행은 실제 작전계획 수립 과정에서 매우 큰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인사, 군수, 정보 분야의 견해를 참조해서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기동계획의 관점에서 작전계획을 수립한 후 그 계획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인사, 군수 분야를 사후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식의 무리수가 범해졌다는 것.
저자는 독일군의 기동계획은 항상 예술적 수준의 경지를 보여줬고 그 계획의 실천 과정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과시했지만 상대적으로 빈약한 인사, 군수, 정보 분야의 능력 때문에 독일군의 전체 전쟁 수행 능력이 매우 불균형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같은 결론을 보여주기 위해 1933년 독일의 재무장 결정 시점부터 1945년 5월 독일의 패망에 이르기까지 독일군 최고 지휘부 주요 인물들의 행적과 조직의 움직임을 차례차례 설명해 나간다.
특히 1941년 12월 15일부터 21일에 이르는 일주일 동안은 무려 50페이지를 할애, 국방군 최고사령부와 육군 최고사령부의 업무처리 과정과 의사결정 과정을 손에 잡힐 듯 복원해 냈다. 이 책은 지난 8월 출간된 “왜 일본제국은 실패하였는가”와 유사한 문제 의식을 보여주는 책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왜 패배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담고 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군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작전수행 능력을 보유한 군대라 할지라도 책임과 권한이 불분명하고 조직 내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경우 패배를 면치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일깨우고 있다.
상하 간 혹은 수평 간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거나 특정 부서의 발언권이 타 부서를 압도하는 현상,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둘러싼 대립 등은 사실 어떠한 군대조직에서도 겪을 수 있는 문제점이다. 이 책이 단순히 제2차 세계대전 특정 국가의 전쟁 지도 문제를 다룬 역사 서적이 아니라 실패 사례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로 현재에도 생명력을 가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의 02-3143-3366
< 출처 : 국방일보 김병륜, 2009. 9. 17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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