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만큼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동물도 흔치 않다. 지금이야 애완견이 주종을 이루지만 개가 인간 사회로 합류하는 초기에는 가축을 지키거나 훌륭한 전사(戰士)로서 많은 공을 세우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B.C. 55년 마스티프(mastiff)를 갈리아에서 로마로 가져 오면서 투견이 전투 부대로 발전하게 된다.

마스티프는 아직도 불독(bulldog)과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70~90kg 정도의 대형견이다. 이 개의 조상은 B.C. 2700년께 북인도·티베트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집트 벽화에도 나타난다.

중동 지방과 지중해를 거쳐 서쪽으로 분포되면서 발전했고 다른 한 부류는 러시아·중국을 경유해 북쪽으로 분포돼 있는데 게르만족들은 이 개의 거칠고 강한 전투력에 매료돼 전쟁에 투입하기도 했다.

이집트왕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주관한 알렉산더 대왕의 환영식에는 마스티프 6개 부대 2400마리가 퍼레이드를 벌인 기록이 남아 있다. 동맹군을 보낼 때 마스티프 부대가 함께 가곤 했는데 그만큼 전투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광복 이후 외국의 서양사 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전투견 부대를 ‘마스티프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로 번역, 개가 장군이 되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보면 쿠빌라이 칸은 그 당시 5000마리의 전쟁용 마스티프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잘 훈련된 마스티프 한 마리의 위력이 병사 10명과 맞먹었다고 하니 다소 과장됐다 하더라도 특수전 부대 수만 명에 해당하는 막강한 전력이었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에서는 개싸움이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이른바 불베이팅(bullbaiting)이라고 해 황소와 개의 싸움인데 주로 코를 무는 개와 뿔로 개를 하늘 높이 날려 버리는 황소의 싸움이어서 투견의 크기는 점차 대형화돼 갔다.

일본이 쇄국 정책을 포기하고 프러시아에 사절단을 보낼 때 가장 싸움을 잘하는 아키타견을 골라서 데려갔다. 그러나 오랜 기간 전투견으로 혈통이 개량된 서양개들에게 연전연패였다. 일본인들은 절치부심했고 귀국 길에 유명한 투견을 종류별로 고치(高知)현 도사(土佐)로 가져와 현장(縣長)에게 세계에서 가장 싸움 잘하는 개를 만들어 내라고 임무를 주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도사견이다.

전투견으로서 개의 가치는 하락했지만 각 국가의 상징으로서 개의 위치는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벨기에의 말리노이즈는 독일의 셰퍼드 못지않게 우수한 개이지만 특수 기능견 시장에서 독일 개들의 위상에 눌려 지명도가 낮다. 국력의 차이인 것이다. 개를 많이 키워 본 사람들 사이에 “진돗개로 시작해서 진돗개로 끝난다”라는 말이 있다. 진돗개로 시작했다가 수많은 외국 개를 섭렵한 뒤 우리 개의 우수성을 잊지 못해 다시 진돗개를 키우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10여 종 이상을 국제 공인견으로 등록하는 사이 우리는 최근에야 겨우 진돗개의 국제 공인을 마쳤다. 뛰어난 품성에도 불구하고 풍산개·삽살개는 아직 국제 공인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최근 독도 문제를 보면서 감정적 접근보다 다각적이고 꾸준한 노력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찮게 보이는 개의 세계에서도 국력과 민족성의 차이는 보이는 법이다.

< 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3. 16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