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6월6일 프랑스 노르망디 오마하 해변의 파도를 뒤로한 채 적막을 깨는 포성이 울린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 수 없는 총알 세례, 그리고 쓰러지는 전투원들 사이로 군의관과 의무병이 분주히 부상자들의 상태를 살핀다.

1998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숨막힐 듯한 초반 30분의 전투 신은 전쟁의 참혹함을 가장 생생히 묘사한 명장면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 자신이 이러한 상황에 놓인다면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할 것인가.

대답에 앞서 이 질문을 던지는 자체가 너무 비정하게 느껴진다. 물론 의무 요원이 많아 부상자를 한 명도 빠짐없이 치료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전장은 사상자로 넘쳐나고 의료진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전쟁은 현장에서 세심한 치료가 가능할 만큼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 명의 전투 손실이라도 더 막기 위해서는 응급 처치를 해야만 살 수 있는 부상자, 당장 치료하지 않아도 되는 경미한 부상자, 그리고 이미 회복의 기회를 상실한 부상자인지를 빨리 판단해 치료 순서를 정해야 한다.

전쟁에서 대량 전상자가 발생했을 때 부상의 심한 정도에 따라 치료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개념은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도입됐다.

그 이전에는 부상자 계급의 높고 낮음이 누구를 먼저 치료할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됐다. 앰뷸런스를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군의관 도미니크 라리는 전투에서 부상 정도에 따라 환자를 분류·치료했다.

라리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됐기 때문에 치료 우선순위에 따른 부상자 분류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트라이이지’(triage)도 분류라는 뜻의 프랑스어 ‘트리에르’(trier)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치료 우선순위는 미국의 남북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때도 그대로 적용됐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군은 이를 한층 더 발전시켜 이동야전병원을 설치했고 의무병에게 전장에서 바로 응급 처치를 실시토록 했다. 이로 인해 외상을 입은 군인들의 생존율은 크게 향상됐다.

6·25전쟁 때는 부상자들을 보다 세부적으로 즉각·지연·최소·기대 처치 환자군으로 분류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환자 이송 수단 개발도 부상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크게 일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부상자가 치료를 받는 데까지 12~18시간이 소요됐지만 헬리콥터가 투입된 베트남 전쟁 때는 2시간 이내로 단축됐다.

때로는 전쟁 상황에서 부상이 가벼운 군인을 우선 치료하기도 한다. 러시아 육군은 경미한 부상자들을 먼저 치료, 최대한 빨리 전장에 다시 투입시키는 역트라이이지(reverse triage)라는 것을 도입했다.

2001년 9월11일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서 일어난 테러는 민간에서도 부상자 분류법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환자를 분류한다는 것 자체가 비인도적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대형 사고를 감당해 낼 수 없는 제한된 인원과 시설로 최대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19세기 초 프랑스군에서 시작된 부상자 분류법은 오늘날 민간에서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3. 17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