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9월2일 수단 중동부의 옴두르만 평원에서 영국군 500명과 수단의 이슬람 민병대 1만4000명이 대치했다. 영국군은 당시 최신식 맥심 기관총 6정을 배치하기는 했지만 수단의 이슬람 전사들은 영국 식민 통치에 반대, 봉기한 상태이고 종교적 광신자에 가까워 매우 두려워했다.

영국군은 28대1이라는 규모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수단 민병대를 학살에 가까운 참극으로 몰며 전투를 불과 40분 만에 끝냈다. 수단 민병대의 기병들조차 영국군 진지에 근접도 못해 보고 궤멸됐다. 당시 21세의 청년이었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도 이 전투에 참가, 무기 체계의 중요성과 군사력 증강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가슴속에 각인했다.

처칠이 석탄 대신 석유를 사용한 해군력 증강을 제창한 이면에는 아프리카·중동에서 생생한 전투 현장을 전투원과 종군 기자로 누비고 다닌 체험적 통찰력이 큰 작용을 한다.

옴두르만 전투에서 나타난 맥심 기관총의 위용은 신무기 출현에 따른 대규모 피해를 이야기할 때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사례다. 수단 민병대가 당시 사용하던 칼을 프랑스 파리의 골동품 가게에서 본 적이 있는데 손잡이를 자기 아버지의 허벅지 뼈로 만든 것도 있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무기를 든 종교적 광신자 집단이 수십 배가 넘는 규모로 포위하는 상황에서 압승을 거둔 것은 오로지 1884년 하이어럼 맥심이라는 영국인 과학자가 전자동식 맥심 기관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1885년 영국군 8000명이 수단의 회교 혁명을 진압하려다 마흐디가 이끄는 이슬람 혁명군에 몰살당한 설욕을 기관총이 대신 해 준 셈이다.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수단은 더욱 처절한 살육의 경험을 헤쳐 나가고 있다. 가해자는 집권 세력인 아랍계 이슬람 민병대인 잔자위드이며 피해자는 기독교를 믿는 토착 흑인들이다. 피해 규모도 1956년 수단 정부 수립 이후 200만 명을 상회하며 2003년 다르푸르 사태 이후에만 10만 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수단 정부군이 아닌 민병대가 탄압의 주역이다 보니 부녀자들에 대한 강간과 질병·기아 등 더욱 참혹한 양상을 띠고 있다.

100여 년 전에는 외세와 독립 세력의 충돌이었다면 지금은 석유 자원을 둘러싼 국가 내의 세력 간 충돌인데 피해 규모도 더 크려니와 훨씬 참혹하다.

또 이슬람 민병대를 지원하는 수단 정부의 뒤에는 인권 문제보다 수단의 자원에 눈독을 들인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다. 당연히 중국의 아프리카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전략도 향후 수단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다.

옴두르만 전투는 영국으로 하여금 19세기 팍스 브리태니커를 실감케 해 준 사건이었지만 100여 년 뒤 수단은 팍스 아메리카나가 중국의 도전에 의해 저항을 느끼기 시작하는 사례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또 모든 수단인에게는 강력한 정부가 현명한 동맹 정책을 구사하지 못한 데서 나타나는 쓰디쓴 결과를 음미하는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2005년 1월 수단이 21년간의 내전을 종식하고 평화 협정을 체결했지만 여전히 내전의 불씨를 안고 있다. 또 수단의 독재 정권과 중국이 강력한 동맹 관계를 지속할 경우 유엔에 의한 석유 봉쇄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1880년대 수단과 영국의 갈등을 그린 영화 ‘하르툼’(Khartoum)이라도 다시 보면서 예측하기 힘든 미래의 모습을 그려 볼까 하는 생각이다.

< 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4. 20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