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사진)는 1588년 1월 단행된 조선군의 여진족 토벌 전투 상황을 담은 101×135cm 크기의 기록화다. 장양공은 조선 선조 때의 장군으로 임진왜란 상주 전투 패전의 장본인인 이일(李鎰·1538~1609)의 시호다. ‘시전부’는 여진족의 부족 명칭이다. 결국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라는 그림 제목의 뜻을 풀어 보면 ‘이일 장군이 시전부족 오랑캐를 토벌한 그림’이 된다.

우리 역사에서 외국에 대한 침략 사례는 없지만 영토 바깥에 대한 원정 작전 사례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왕조가 압록강·두만강을 넘어 여진족 거주 지역을 대상으로 단행한 원정 작전은 10차례가 넘는다.

태조·태종·세종대에 걸쳐 압록강·두만강으로 영토를 넓힌 후 국경선이 안정화될 때까지 조선군은 수시로 국경을 넘어 원정 작전을 단행했다. 조선 왕조는 특히 여진족이 조선에 침입, 약탈할 경우 그에 대한 보복·응징 차원에서 과감한 공격 작전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중에는 최대 1만 명이 넘는 병력을 동원한 대규모 작전도 있었다.

조선 왕조는 국경 방어를 위해 수세적 대응으로 일관한 것이 아니라 필요할 경우 공세 작전을 과감히 실시, 압록강에서 두만강으로 이어지는 영토를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었다.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는 이처럼 과감한 대외 원정 작전도 마다하지 않았던 조선 왕조의 강렬한 영토 수호 의지가 담겨 있는 역사 기록화라는 점에서 가치가 큰 유물이다.

1588년 1월 조선 왕조는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북병사) 이일의 지휘 아래 2500명 내외의 기병을 동원, 경원 부근에서 두만강을 도하해 시전부의 여진족을 공격했다. 이들이 1583년 조선 영토인 녹둔도 일대를 침범한 것에 대한 응징 차원이었다.

실록에 따르면 이일이 지휘하는 조선군 기병들은 밤 9시부터 11시 사이를 의미하는 이경(二更)에 행군을 시작, 밤 11시와 새벽 1시 사이인 삼경(三更)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도하해 새벽녘에 여진족의 거점을 기습한 것으로 돼 있다. 조선군은 200여 채에 이르는 가옥을 불태우고 여진족 383명의 목을 베었다.

당시 여진족이 조선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강력하게 저항했다고 기록에 전한다. 하지만 기습이 완벽히 성공한 때문인지 실제 전투의 흐름은 조선군의 일방적 우위로 진행됐던 것 같다. 조선군 전사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 그 증거다. 그림 속에는 이일 장군이 호상에 앉아 있는 가운데 조선 기병이 종대 대형으로 길게 포진하고 있고 그 사이에 여진족 포로들이 포박당한 채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17세기 초 이일의 손자가 조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처음 그린 것이며 현재의 그림은 1849년에 다시 그려진 것이다.

그림 하단에는 당시 참전 장수들의 이름과 직책이 상세히 쓰여 있어 조선군 전투 편성 사례를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특히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전시 임시 지휘관 직책인 우화열장(右火烈將)으로 참전했다고 기록돼 있어 눈길을 끈다. 백의종군이 현직에서 해임되는 것일뿐 병사 신분으로 강등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7. 5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