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만큼 바쁘고 즐거운 지도자를 지구촌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7월1일 크렘린 궁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함께 ‘21세기 국제 질서에 대한 공동 선언’을 채택하더니 3일에는 프랑스·독일의 정상과 칼리닌그라드에서 ‘러시아와 유럽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한동안 힘 빠진 거인으로 폄하되던 러시아가 세계 질서의 주연급 배우로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원동력은 푸틴의 지도력도 작용하겠지만 구체적으로는 에너지와 무기 시장에서 엄청난 실리를 챙기는 현실에서 나온다. ‘몰락한 군사 대국에서 에너지 초강대국’을 꿈꾸는 러시아의 행보는 요즈음 언론에서 요란하게 다뤄지고 있지만 무기 시장에서의 ‘즐거운 비명’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무척이나 짭짤하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러시아는 미국을 제치고 최대 무기 판매 국가로 부상했다. 성능 면에서야 아직 미국의 실력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지만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전략적 협조 관계로 잡았고 최근 신규 고객 확보에 대단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에너지와 무기 시장에서 돈이 쏟아져 들어오니 연구개발 투자도 늘어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국가 전략이 착착 현실화되고 있다.

수호이(Sukhoi)-30 같은 첨단 항공기 판매는 경제적 실익 외에 군사 동맹 강화, 미국 기술력과의 격차 해소 등 다양한 효과를 내고 있다.

2004년 8월 러시아는 지난 10년간 진행된 Su-27·30 178대의 중국 판매 계약을 완료했다. 또 추가적으로 Su-30을 중국에 48대, 베트남에 24대, 인도네시아에 4대, 말레이시아에 18대를 판매할 예정이다.

인도는 항공모함 INS Vikramaditya에서 2008년부터 운용될 MiG-29K 16대를 구매할 예정이다.

중국이 야심을 가지고 추진 중인 J-10 전투기는 러시아에서 구입한 250대의 MMPP 살류트(Salyut) AL-31FN 엔진을 장착할 예정이며 Su-30 전투기 엔진 구매를 포함해 23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

문제는 동아시아에 제공되는 Su-30 기종들이 다양한 기능 보강으로 실제로는 Su-35에 육박하는 성능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확산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으로서는 큰 부담이지만 브라질·인도는 러시아의 덕을 볼 가능성이 많다.

두 나라는 공히 수호이 전투기를 유력한 차세대 전투기 기종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가 미국의 입김으로 유예시킨 상태다. 당연히 미국으로서는 상응하는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할 압력을 받게 된다. 이제 갓 실전 배치하기 시작한 JSF-35·F-22 랩터를 싸게 팔라는 협상에 직면할 수도 있다.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이제는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F/A-18 호넷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는 호주도 러시아제 최신 전투기의 아시아 지역 확산에 강한 경계심을 내보이고 있다. 단일 전투기 기종만도 이러니 미사일이나 기타 분야를 포함하면 그 규모가 훨씬 커지지만 상세한 내막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무기와 에너지 시장의 결합에서 회수되는 자금은 다시 기술개발과 군사 훈련의 증가로 이어져 동맹 만들기의 실탄으로 다시 유입된다.

미국의 JDAM에 해당하는 KAB-1500 계열 정밀 유도 폭탄도 러시아의 위성 항법 시스템 글로나스(GLONASS)의 재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인도에 수출된 Su-30MK에는 이 신형 폭탄이 장착됐다.

새로이 선출된 이란 대통령 당선자가 “이란은 강력한 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니 러시아의 시장은 확대될 것이고 푸틴의 “룰루랄라”는 더 높게 울려 퍼질 것이다.

< 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7. 5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